'소리'는 소리 내기와 소리 듣기를 수반하는 상호교류의 경험이다.
그것은 공기 중에 퍼졌다가 사라지는 물리적 현상에 머물지 않는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고, 무엇이 들리고, 무엇이 배제되는가에 따라 소리는 관계를 조직하고 권력을 드러내며 공동체의 경계를 만든다. 김영은의 작업은 바로 그 지점, 소리를 둘러싼 행위가 어떻게 사회적·정치적 수행이 되는가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붉은색 대형 화면과 그 위에 적힌 글씨였다. <붉은 소음의 방문>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이 작업에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 존재했던 두 가지 종류의 소리가 등장한다. 바로 사이렌과 라디오다.
통행 금지 사이렌 소리는 식민, 전쟁, 독재를 거치는 시기 동안 개인의 자율성과 신체, 시간을 억압했다. 이 작품은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일제 강점기 주민들의 감시를 위해 세워졌던 높은 붉은 벽돌 망루에서 흘러나왔던 사이렌 소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 기억은 점차 통금 사이렌 전반으로 확장되며, 강제된 청취의 역사를 더듬어간다.⑴

사이렌이 울리는 그 시간, 라디오를 통한 은밀한 청취가 시작된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불법적이고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국가가 명령하는 소리와 개인이 몰래 선택하는 소리, 이 두 가지 청취 행위는 단순한 음향적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각각 복종과 저항이라는 상반된 수행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었다. 들어야만 하는 소리와 들어서는 안 되는 소리 사이에서, 민중은 집단적 청취에서 점차 은밀하고 개별적인 청취로 이행한다. 이때 '듣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 된다. 강제적으로 들어야 하는 사이렌은 신체에 각인되는 방식으로 개인을 조율하고 통제했다. 반면 들어서는 안 되는 라디오 소리는 그 금지의 무게 속에서 오히려 청취 주체를 각성시키고 자극했다. 김영은은 이 두 층위의 청취 경험을 병치함으로써, 소리를 매개로 한 통제와 균열의 구조를 드러낸다.
<붉은 소음의 방문>은 사이렌과 라디오에 대한 개인의 기억, 그리고 당대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뉴스와 인터뷰 등 다양한 문헌을 토대로 구성된다.
문헌에서 발췌한 문장들은 붉은 배경 위에서 다소 거칠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부유하며, 다양한 소리들이 그에 교차한다.
그 시각적·청각적 충돌은 청취라는 행위를 낯설게 한다. 우리가 매일 반복해온 듣기가 사실은 얼마나 정치적인 몸짓이었는지를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전시장 안에서 김영은의 작업은 우리를 다양한 청각적 사건 속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듣게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 듣기는 어떤 행위인가.
⑴ 김영은 작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