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잡지 에디터를 희망했던 20여 년 전, 필자는 포털 사이트에 ‘에디터는 어떻게 될 수 있나요?’와 같은 글들을 서치하곤 했다. 그 당시 매거진 업계에 대한 질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던 답변은 매거진은 이미 ‘사양 산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론을 비웃듯 매거진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인스타그램으로의 플랫폼 확장, 그리고 최근 2년 사이 대두된 ‘텍스트힙’ 트렌드에 따른 출판 문화의 재조명으로 또다른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각자의 소비와 취향이 신성시되는 오늘날의 소비 사회에서, 매거진은 개개인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정의하고 확장해주는 매체로 기능한다. 산업 규모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효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매거진’이라는 매체는 갈수록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각기 다른 취향과 관점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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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사용자라면 최근 몇 년 사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수와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많은 레거시 미디어 또한 인스타그램 매거진 운영에 뛰어들었고, 일부 매체는 ‘인스타그램 매거진’이라는 고유한 형식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일관된 썸네일 구성, 이모지(Emoji)와 밈(Meme)의 적극적인 사용, 숏폼 콘텐츠, 짧은 호흡과 높은 가독성을 강조한 텍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이캐칭과 대중성, 유명인 중심의 콘텐츠에 무게를 둔 이러한 국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형식은 점차 한계 또한 드러내고 있다. 친근함을 우선시한 에디팅은 콘텐츠가 지닌 고유의 밀도와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독자에게는 과잉 정보로 인한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불어 ‘○○코어’로 대표되는 단기적 트렌드 경쟁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구조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각 매거진의 목적에 따라 톤앤매너와 콘텐츠 구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이처럼 고착화된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형식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류 매거진의 상황은 또 다른 의미에서 고루한 인상을 준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주요 매거진 다수는 여전히 보수적인 업계 관행을 답습하며, 콘텐츠 차원에서 새로운 감흥을 제공하지 못한다. 심지어 해외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서브컬처 매거진조차 국내에서 발행될 경우 연예인과 케이팝 중심의 콘텐츠로 재편되며, 기존의 편집 방향이 현지 자본에 의해 희석되곤 한다. 왜 연예인과 케이팝을 배제한 국내 주류 매거진은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일까. 현재 국내 매거진계에는 비즈니스 논리를 전면에 두지 않으면서도, 문화를 이루는 개개인의 삶과 태도를 포착하고 하나의 일관된 시선으로 깊이 있는 사유를 전달하는 매체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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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트 북 페어. (출처 : 인스타그램 @tokyoartbookfair)

 

 

이러한 지점에서 소규모 독립 출판물인 ‘진(Zine)’은 매거진 생태계의 또 다른 대안으로 주목할 만하다. 기존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비교적 가까운 정서적 거리감과 접근성을 강점으로 삼아왔다면, 진은 그 위에 독자와의 유대감까지 더한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역시, 진은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요구하는 비교적 적은 자본과 높은 콘텐츠 자유도를 다른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는 매체다.

 

더 나아가 진은 출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출판 예술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지류 매거진의 만족감을 계승하면서도, 훨씬 제약 없는 실험의 장을 제공한다. 진을 통해 독자는 보다 자유로운 사상과 레이아웃, 사진, 예술, 그리고 글을 접하게 된다. 다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창작물에서 비롯되는 예측 불가능성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작용한다. 이는 일부 인스타그램 매거진에서 결여되었던 사회와 업계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보다 진솔한 목소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진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출판 현상이며, 특히 케이팝을 제외한 문화가 상대적으로 가시화되기 어려운 국내 매거진 환경에서는 더욱 의미 있는 존재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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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트 북 페어. (출처 : 인스타그램 @tokyoartbookfair)

 

 

필자는 인스타그램이든, 진이든, 어떤 형식이든 매거진이 언론의 한 형태로서 브랜드와 자본에 과도하게 종속되지 않고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가 무난하다고 느낄 콘텐츠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유발할 수도 있는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 싶다. 그러한 콘텐츠가 대다수의 이해를 얻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는 소수의 존재와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멋있고 정제된 이미지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현실을 포용하는 매거진을 국내에서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브컬처를 다룬다면 힙함이나 ‘간지’로 소비되는 표면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적 배경과 실제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화 없이 서브컬처를 조명하는 매거진이길 바란다.


비즈니스와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언론은 이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거진이라는 형식을 통해 언론이 지닐 수 있는 가치를 국내에서도 더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현 매거진계의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동시에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수많은 인스타그램 매거진과 새로운 시도들 역시 국내 매거진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출발점이라 믿는다. 필자 역시 이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그 가능성을 응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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