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를 보았다. 스무 살이 넘어 본 첫 어린이 연극 공연장을 나오며 과거에 경험한 어린이 연극을 떠올렸다. <개미와 베짱이>를 보면서 개미와 베짱이 탈을 쓴 성인 배우들을 보며 무서워 펑펑 울었던 기억, 초등학교 때 나눠준 문화 캘린더를 보고 <어린이 베니스의 상인>을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꺼냈다.

    

미성년의 시기에 본 공연들은 내용이 흐릿하지만 그곳에 가는 발걸음이 신났고 공연장에서 배우의 감정을 좇아 시간을 보내는 게 놀라운 체험이었다. 그때의 경험들이 현재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정체성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을 테지만, 이번 연극만큼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때는 분명히 관객의 시선이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하마터면 열린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갈 뻔했기 때문이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8.jpg

 

 

이번이 세 번째로 올라온 공연인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이상의 1934년작 시 <오감도>를 어린이 9명과 어른 5명이 참여하여 현대에 도로를 질주하는 아해들의 시각을 담아 해석하여 명동예술극장 무대 위에 올렸다.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던 당시에 이상의 <오감도>는 대중에게 내용을 알 수 없이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원래 30편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15편 만에 조기 중단되었다. 사실 이 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난해시로 현재까지도 긴 시간 꾸준히 연구되는 작품이다.

 

재밌는 점은 이 어려운 시를 미성년 아이들이 함께 작품 해석에 참여하며 만든 공놀이클럽의 공연을 보고 나서 눈 반짝이며 다시 시를 읽고 살짝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작에서 제1의 아해부터 제13의 아해까지 ‘무섭다고’ 하는 반응만 보일 뿐 ‘무엇이’ 무서운지 상황과 대상이 명확히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공연에서는 주인공 ‘아해들’이 무엇이 무서워 도로를 질주하는지부터 물으며 연극의 막을 연다.

 

공놀이클럽은 13명의 아해들이 태어나기, 달리기, 부모님, 집, 학교, 서울, 스마트폰, 아이돌, 나이 드는 것, 꿈, 노키즈존, 전쟁, 나를 '무섭다 그런다'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면 구성만 들었을 때는 잘 그려지지 않던 상황이 실제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목소리와 몸짓으로 전달하자 관객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비추며 함께 도로를 질주하는 아해가 되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공연은 5세 이상 관람가였으나 실제 공연장에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관객이 더 많았고, 아이들의 연기를 보며 훌쩍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0.jpg

 

 

아이들이 과연 이 타이밍에 관객이 울컥할 줄 예상했을지 궁금해질 만큼 필자 또한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눈물이 차오르는 이유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더 가까이서 무서움을 느낄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 자체’ ‘기대와 희망으로 은밀하게 부담을 주는 부모님’ ‘아이들의 작은 사회에서 어른들의 무거움으로 번지는 학교’의 상황에서 명동예술극장에 모인 모두가 이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미 걸어왔음에도 자연스레 잊고 있던 당연하고 익숙했던 무서움을 마주할 때 잘 지나온 자신에게 기특함의 눈물과, 현재 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눈물이 고였다.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겪고 있는 무서움을 이야기하는 어린이 배우들이 눈물과 함께 더 반짝였다. 가장 공감하며 반응했던 무서움은 시간이 지나 그 무게를 느끼는 것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오는 무서움이지만 나만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을 지나 이웃과 세상을 알게 되며 점차 무게감이 더해가며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져 있는 무서움이다.

 

처음 태어나 뒤집고 구르는 것만으로 칭찬받던 아이는 걷고 뛰기 시작한 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나이는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들을 차례로 제시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말과 달리 세상이 정해놓은 도로 위에 안착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짐을 지워준다. 우리의 꿈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얻는 것처럼 자연스레 그 도로에 들어서기 위해 장애물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들이 된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5.jpg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왜 어른이 되어야 할까? 무섭게 느껴지는 어른의 세상, 어른은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공연을 보는 내내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녔고, 속에 감추고 살았던 마음속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로를 질주하며 무서움을 느끼는 아해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관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는 일이 여러 방면으로 무서운데 세상을 이루고 있는 개인들을 들여다보면 모두 무서워서 각자 질주하고 있다.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는 결국 모두 우리인 것이다.

 

개인의 고단한 달리기가 서로를 무섭게 만들고 있음을 곱씹으며 생각하고 있을 때, 현 상황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9명의 아이의 솔직함이 머릿속에 들어와 깊이 박힌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주말에 자신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부모님이 이상하고,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될 일이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심각해지는 학교 어른들이 이상하고, 현실에서 이웃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 속에서는 다정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이상하다고 한다.

 

이상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혹은 인식했더라도 공연히 건드리지 말자는 소극적 태도로 살던 어른과 달리 꺼져버린 마이크에 아랑곳하지 않고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는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멋졌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독차지하여 보지 않고 관객에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공놀이클럽에 감사한 마음이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4.jpg

 

 

공놀이클럽의 이상한어린이연극 덕분에 되찾은 세상의 이상한 균열들을 발견했으니, 아이들보다 세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어른들은 한 층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오감도 시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인 ‘무서움’이 어른들에게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생각하고,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어린이들처럼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삶은 불확실한 두려움과 공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사랑은 다른 사람을 통해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모두 채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본인의 행복을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먼저 사랑하는 내부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안개처럼 막막한 길을 향해 질주해도, 안 해도 좋다는 완벽함을 내려놓는 선택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의 정답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답이 아닌 나를 평안하게 만드는 해답을 스스로 경험하며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어른이 된 우리는 아이들이 답을 찾아가는 여정 가운데 넘어지고 장애물에 부딪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 새롭게 나아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돌아가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영화 <벌새>의 대사

 

 

영화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 은희에게 편지를 남긴다. 어른이 된다고 지금 겪는 무서움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즐거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삶을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균형을 찾는 아름다움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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