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이 있지만, 2025년을 한 번 되돌아보자. 늦었다고 느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고, 새로운 일을 저지르기 전 어느 정도 정리해 두는 것이 바로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새해의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지난 1년 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올해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속속들이 파헤쳐 빠르게 톺아보기. 그리고 그걸 토대로 이번 해의 목표 정하기. 이렇게 하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것 같다.
25년에는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Happy New Year's Eve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보냈으며 떠오르는 새해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하늘에서 맞이했다. 새로운 해를 그렇게 시작해 버려서 그런지, 아니면 역마살의 바람이라도 분 것인지 전과는 다르게 이곳저곳으로 떠나 시간을 보냈다.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부터 일본의 오키나와, 한국의 제주도, 홍콩섬과 베를린까지. 조금이라도 금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곧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짐을 부리나케 챙긴 다음 낯선 타지에서 계획 없이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식재료를 맛보고 미뢰를 깨우며, 새로운 기후를 살갗으로 느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억양으로만 이해했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지하철역에서 오로지 감으로만 때려 맞추어 어찌저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고, 한 번 보고 말 사이임에도 따뜻한 친절을 베푸는 이들과 타지인에게 유난히 야박한 이들을 연이어 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방법에 대해 체득했고, 나와는 다른 타인에게 연연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수많은 시간이 지난 후, 기억을 돌이켜 보았을 때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여행을 하는 것보다 여행을 다녀온 후 그 순간에 대한 회상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1차원적인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그곳으로 떠나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 연차, 사람들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기보다도 말이다. 한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추운 날씨에 몸이 얼어버릴 것 같다든지, 너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는데, 눈에 보이는 가게는 모두 닫았다든지, 화장실이 급한데,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곤란한 적도 참 많았다. 잘 알지 못하는 타지에서는 변수가 많이 생긴다. 하물며, 말 통하는 한국에서도 새로운 지역에 가면 밥집을 찾는 데에만 애를 먹곤 하는데,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문화도 맞지 않는 외국에서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괜스레 짜증이 치솟기도 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기도 하고, 상상했던 광경과 눈앞에 놓인 현실이 달라 실망하기도 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러면 알 궂게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여정 동안 지체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아름답기만 한 이상보다 눈앞의 현실이 훨씬 매서웠다.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에,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많았다. 갑작스럽게 툭 하고 튀어나오는 “집 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마치 재채기 같아서 너저분한 뒤끝을 남기곤 했다. 의식적으로 “아니야, 여길 어떻게 왔는데. 최대한 즐겨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보여지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를 가더라도 마음의 안식처인 집을 꼭 붙들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이 웃기게만 느껴졌다.. 돌아올 수 있는 구석이 분명하게 존재해야만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가 너무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 같아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 번 결정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결심도 느껴지지 않고, 어떠한 모험에 패를 걸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드는 생각으로는 바다의 해파리처럼 파도에 너울거리는 사람이 멋있다. 시공간이 바뀌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고,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탓에 기력을 낭비하지 않고,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나아가서는 새로운 타지로 훌쩍 떠나 직접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사람. 비행기에 실려 낯선 곳에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찾고, 사람을 사귀어 나가며 0에서 1이 될 수 있는 사람. 장소가 어디든지 간에,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지 간에 그 속으로 자연스럽게 동화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데, 나는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나에게도 좋다고 느낀 것에 곧바로 직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여행하다 마주친 이 풍경과 두 발을 내디딘 이 땅이 너무 좋아 바로 정착해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용기를 가지고 싶다. 그렇게 주어진 것이 하나 없는 척박한 곳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고 싶다. 뿌리를 내리지 않더라도,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기꺼이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게 흘러 들어간 바다에서 햇볕을 받고 영양분을 흡수해서 자양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2026년의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다.
2024년을 정리하며 2025년 1월의 내가 세운 방향은 그저 여행을 많이 다녀보는 것이었다. 항상 집을 오가던 익숙한 버스에 몸을 싣고 자각 없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어느 날, 이만하면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모두 보낸 탓에 늘 남들보다 경험치가 부족한 것 같았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거치며 나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학업으로 발이 묶여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25년은 졸업과 동시에 자유를 맞을 수 있었다. 그동안 근근이 아르바이트하며 벌어온 돈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이 시작했다. 2025년의 내가 그저 다양한 곳에 발 디디는 것에 만족했다면, 2026년의 나는 이 정도로는 불충분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추후, 내가 빠져들어 갈 그곳에 온몸을 힘껏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