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익숙해서, 다시 읽게 된 책 ―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이상한 위치에 놓인 책이다.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칭찬하라”, “논쟁하지 마라”, “상대를 존중하라.” 우리는 이 문장들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은 읽지 않아도 아는 책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인간관계론>이라는 제목만 봐도, 대략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을 잘 대하라는 말,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라는 조언, 결국은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일 거라고. 그래서 이 책은 늘 ‘언젠가’ 읽을 목록에만 머물러 있었다.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은 그런 나의 태도를 먼저 흔들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우리는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해 왔을까.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맥락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는 우리가 오해해 온 문장들을 하나씩 짚어준다. 예를 들어 ‘논쟁을 피하라’는 원칙은 흔히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수긍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논쟁’은 건강한 토론이 아니라 감정적인 말싸움을 말하는 것에 가깝다.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승패가 갈리는 대화, 그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는 대화,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언쟁을 피하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뭔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강하게 주장할 때 그런 대화를 먼저 시작하곤 한다. 그런 시간이 끝나면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지만 결국 관계는 더 멀어져 버린 장면을 이 책은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정말 소통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단지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을까.
‘칭찬하라’는 조언도 다시 보게 된다. 이 문장은 늘 어딘가 불편했다. 싫어하는 상대에서 까지 억지로 웃고, 억지로 좋게 말하라는 강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칭찬은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은 상대의 마음을 닫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특히 관계에서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할 때, 칭찬은 방어를 낮추는 문이 된다.
특히 이 책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성실함’이다. 상대를 중요하게 여기되, 반드시 진심으로 대하라는 말. 이용하기 위한 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빈말로 하는 칭찬, 공감은 알아차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내게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을 쓰게 되는 건 아주 당연한 거였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여러 단계로 나눠서 설명해 준다. 먼저 신뢰를 쌓고, 그 위에 호감을 만들고, 그다음에 협력과 설득이 가능해진다는 구조. 아무리 말을 잘해도, 기본적인 신뢰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끈질기게 강조한다.
이 구조는 지금 우리의 일상과도 닮았다. 우리는 메시지를 빠르게 주고받고, 회의하고, 댓글로 의견을 나눈다. 하지만 관계는 점점 더 피곤해진다. 말은 많아졌는데, 이해는 줄어든 느낌이다. 이 책이 말하는 ‘먼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돼라.’는 조언은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은 읽고 나서 바로 달라질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고 나면,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 무심코 보낸 감정 없는 공감, 대화 중에 보였던 태도를 떠올리게 돼 인간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든다. 나는 정말 상대를 이해하려 했는가. 나는 갈등을 풀려고 했는가, 아니면 피하려 했는가. 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감수해 왔는가.
이 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독자는, 아마도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일 것이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너무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피곤해진 사람들. 말 한마디에 오래 마음 쓰고, 관계 하나에 쉽게 지치는 사람들. 이 책은 그런 독자에게 조금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더 애쓰라는 말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바라보라는 제안이다. 너무 유명해서,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제대로 읽히지 못했던 책.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은 그 오래된 고전을 다시 현재로 불러온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지금,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