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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오스카 시상식이 3월 15일로 예정되며 50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사이트를 둘러보면, 오스카 후보작으로 지명된 작품들에 큼직한 타이틀이 자랑스럽게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오스카는 지난 11일 골든 글로브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연이어 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과 주제가 부문 후보로도 지정되며 국내에서도 유독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작년 10월에 개봉하며 큰 화제가 되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역시 어김없이 이번 오스카 후보작에 올랐는데, Best Picture, Cinematography, Music(Original Score) 등 9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강력한 수상 경쟁자로 떠올랐다.

 

(여담으로는 작년 5월 국내 개봉한 <씨너스: 죄인들>이 이번 오스카에서 무려 1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기록은 <이브의 모든 것>, <타이타닉>, <라라랜드>의 14개 부문 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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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과 함께 다크 판타지의 양대 산맥인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오스카에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는 <셰이프 오브 워터>로 미국과 영국 오스카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피노키오>로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각각 수상했다. 하지만 델 토로 감독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대표작은 따로 있다. 바로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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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양 눈을 손바닥 중앙에 박아 넣고 활짝 펼쳐 앞을 보는 괴물이나 어디선가 이를 오마쥬한 모습을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판의 미로>는 이 상징적인 괴물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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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터라 작년에 유튜브 라플위클리 토크에서 이동진이 추천작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번에 같은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 오스카 후보로 지명된 것을 보고는 묵은 숙원을 해치워버렸다.

 

<판의 미로>는 2006년 개봉한 다크 판타지 영화로, 1944년 스페인을 배경으로 어린 소녀 ‘오필리아’의 환상적이면서도 어두운 모험을 다루고 있다. 작품의 외부 설정이나 내부적으로나 ‘다크’ 판타지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를 틀면 가장 먼저 나오는 잔잔한 나레이션 글자만 봐도 벌써 불운의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숲으로 숨은 시민군은 파시스트 정권에 계속해서 저항했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이 곳곳에 배치됐다.

 

 

짧은 나레이션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워 따로 찾아본 바로는, 스페인에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대대적인 내전이 있었다. 소련과 멕시코로부터 지원받은 공화파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로부터 지원받은 국민파 간의 근 3년에 달하는 이 스페인 내전은 당시 불안하던 국제 정세를 그대로 줄여놓은 듯한 상징적인 전쟁이었고, 이를 지켜보던 강대국들에 전쟁을 치를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결국 1939년 4월에 내전이 끝난 뒤 곧바로 그해 9월에 제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핵심 계기가 되었다.

 

사상자를 총 50만여 명이나 낸 이 내전은 파시스트를 위시한 국민파의 승리로 끝이 났고, 결국 ‘1944년의 스페인’이란 나라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반으로 가르고 만 내전의 뒷수습도 미완성인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어난, 꿈도 희망도 없는 황폐한 배경 그 자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판의 미로>는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 던져진 어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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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오필리아는 어머니가 군 대위인 비달의 아이를 임신해 그와 재혼하며 대위가 주둔하는 산속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군을 추적해 사살하는 일을 맡은 그녀의 새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냉혹한 성격이었고, 오필리아와 어머니는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러던 중 오필리아는 자신을 지하 왕국의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마법적인 존재들을 만나며 점점 그 세계에 빠져들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여러 시련을 통과한다. 그렇게 집 근처에 있는 신비로운 미로에 숨겨진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몰두하는 동안 오필리아를 둘러싼 현실은 반대로 점점 잔혹해지기만 한다.

   

 
아주 먼 옛날, 거짓도 고통도 없는 지하 왕국이 있었다. 그곳에 인간 세상을 동경하는 공주가 살았고, 푸른 하늘, 산들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시중들을 따돌리고 지상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지상으로 나오자 눈 부신 햇살에 눈이 멀고 모든 기억을 잃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추위와 질병의 고통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공주의 아버지인 왕은 다른 모습으로라도 언젠가는 공주가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다. 왕은 죽는 날까지 공주를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끝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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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는 여러 가지로 훌륭한 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줄 타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판타지 작품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반대 세계, 즉 판타지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소비자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 당연히 기대되기 때문에 구태여 ‘현실’을 깊게 다루는 일은 적다. 가끔 원래 세계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위한 장치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쯤으로나 등장하는 정도다. 요즘은 ‘현대 판타지’라는 장르도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대부분 결국은 ‘판타지’를 선보이기 위한 기반으로 독자에게 익숙한 현대 세계를 이용하는 격이다.

 

하지만 <판의 미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가 비슷한 비중으로 양립한다. <프랑켄슈타인>이나 <피노키오> 같은 델 토로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판의 미로>만의 분명하고 독특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 속 판타지 세계인 지하 왕국은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서의 관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환상’, ‘초현실’이라는 단어 뜻에 모순되게도, 이 세상의 판타지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실과 떼놓고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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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르는 주류보다는 서브 컬쳐로 주로 구분되곤 하지만, 오랫동안 저명한 작품들을 많이 배출해 오기도 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부터 <트와일라잇> 같은 로맨스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트랜스포머> 같은 SF(공상 과학), 웹툰이나 웹소설까지. 하지만 단순히 유명하거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떠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 독특한 메시지와 스타일을 품은 대표적인 작품을 골라 추천해야 한다면, 이 <판의 미로>를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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