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학년을 끝내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가볍게 떠 있습니다. 바람 한 번만 불어도 흩날리는 재처럼 흩어지고 있는 기분입니다. 긴 시간을 달려왔다는 사실이 몸을 한순간에 공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해왔던 일들, 해나가야 할 일들, 남아 있는 것들, 정리해야 할 마음들. 모든 게 한꺼번에 공중에 흩어져 제 손에 잡히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은 채 어딘가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삶이 참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어디론가 떠밀린다는 기분 탓에 온갖 맹목적인 일에 빠져있었지만, 타인의 것들로 가득찬 마음은 결국 온전한 제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마음에 두서가 없습니다. 아니, 두서 없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흐려지는 기분이 듭니다. 모든 마음의 의견이 피곤해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보거나 제목을 붙여보는 일이 절 계속해서 미궁에 빠트립니다. 정반대의 마음들이 모두 참인것 같기도, 모두 거짓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충돌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이 시기의 제 마음을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데, 두루뭉술한 날들을 어떤 형태로 담아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무용한 것들로 충만함을 얻으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의 속도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가 서로 맞지 않을 때, 그 틈에서 생기는 소음이 제 마음을 많이도 갈라놓습니다.
저는 기대에 헤픈 사람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참 많이도 기대했습니다. 쌓아온 것들이 언젠가 어떤 지점에서 맞닿기를, 누군가에게 의미로 읽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기대는 종종 상실의 전조가 되었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제 안에 무언가가 계속해서 흩어졌습니다.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부실한데 쌓아 만들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지. 어느 날부터 기대가 두려워졌다는 진부한 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자꾸만 스스로 모질어져야만 하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저를 보호하려는 마음이었는지 온갖 것들로부터 계속 도망쳤습니다. 기대에 대한 공포감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이되어서 이상한 행동들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여전히 기대를 하게 됩니다.
아주 작은 것들에 마음이 흔들리고, 누군가에게 바람을 걸고, 손가락 끝만큼의 희망을 미래에 얹습니다. 기대라는 건 상처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첫 지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얇은 실처럼 가느다란 기대감이 저를 계속 살게 만듭니다.
모호한 상실에도 불구하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를 역시 기대였습니다.
마음이 닳아 없어지는 시대라고들 말하지만,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사소한 기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허기지고 각박한 얼굴들 사이에서 거창한 성취 대신, 오늘 하루를 조금 덜 무너뜨리는 작은 바람들. 그 미세한 온기가 삶을 지탱해 줍니다.
저는 아직 그렇게 대단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못 되어서 아직도 뭐가 참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에게 버킷리스트는 미래의 거창한 목록보다는,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은지에 대한 감정의 방향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지탱할 아주 조그만 기대들을 품는 일도 얼마든지 버킷리스트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흩어져버린 재 위에 다시 무언가를 쌓는다면, 그 첫 번째 작은 알갱이는 아마 ‘기대’ 일 것 같습니다. 그저 오늘의 내가 내일을 향해 살짝 몸을 기울이는 일. 사라진 것들 위에서 다시 살아보겠다는 아주 작은 의지의 형태.
그래서 제 올해의 버킷리스트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는 단 하나, ‘기대하는 나로 살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