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친구들을 만나면 보통 어디를 가는가?
카페, 술집, 혹은 늘 가던 단골 공간. 연초가 되면 자연스럽게 약속이 늘고, 그만큼 ‘오늘은 또 어디서 뭘 하지’라는 고민도 반복된다. 꼭 술이 있어야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었다. 바로 보드게임이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보드게임을 꽤나 즐겨왔다. 처음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에 눈을 뜬 건 동네 틴더(청소년 무료 쉼터)에서 발견한 보드게임 ‘뱅’이었다. 친구들과 열심히 설명서를 읽고 방법을 찾아보면서 터득한 보드게임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상징이 되었고,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따로 구매할 정도로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드게임카페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정말 설렜다. 내가 좋아하던 놀이가 드디어 제대로 된 공간을 얻었다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나는 주로 만나는 친구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들과 보드게임카페에 가면 한 번에 최소 세 개의 게임은 하고 나온다. 익숙한 게임을 다시 꺼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새로운 보드게임을 찾는 데 쓴다. 벽면을 가득 채운 보드게임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건 뭐지?’ 싶은 것들을 하나씩 집어 온다. 규칙이 복잡해 보이든, 그림체가 독특하든 일단 끌리면 테이블 위에 올려본다.
물론 모든 선택이 성공적이진 않다. 방에 들어오면 태블릿으로 게임 설명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영상을 보다가 “음… 이건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포기한다. 그렇게 실패를 몇 번 겪고 나서야 진짜 재밌는 게임을 만난다. 그 순간의 만족감은 꽤 크다. 조금 과장하자면,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다. 물론 콜롬버스까지 갈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
보드게임의 좋은 점은 잘 몰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칙은 현장에서 충분히 익힐 수 있고, 처음엔 어설퍼도 금세 웃음으로 바뀐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규칙 안에서 반응하고 속고 속이며 웃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각종 미디어가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운 지금, 보드게임은 화면 없이도 충분한 도파민을 준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사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경험. 게다가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적당한 이용료와 음료값으로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고, 얻어 가는 기억은 그보다 훨씬 많다.
연초의 약속들 사이에서 혹은 술자리가 조금 지겨워졌다면 한 번쯤 보드게임 테이블 앞에 앉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는 밤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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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글을 끝내는 건 아쉬우니 간단히 친구들과 즐기기 좋은 보드게임 추천 TOP4를 정리하여 보았다.
너도? 나도! 파티
난이도: 하
인원: 3~12인
2. 주제 카드를 보고 떠오르는 단어 6개를 쓴다
3. 쓴 단어를 큰 소리로 발표한다. 같은 단어를 쓴 사람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
‘너도? 나도!’는 아이스브레이킹용으로 더없이 좋은 텔레파시 게임이다. ‘달걀이 들어가는 음식은?’, ‘변장할 때 유용한 도구는?’처럼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각자 자유롭게 단어를 적는다. 이 게임의 핵심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사고방식이 닮아 있는지다. 같은 답을 쓴 사람이 많을수록 점수가 올라간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단어가 완전히 일치해야만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과 ‘스마트폰’은 다른 단어로 처리되고, ‘콘텐츠’와 ‘컨텐츠’처럼 표기만 다른 경우도 인정되지 않는다.
서로 마음이 통했을 때의 짜릿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웃음도, 환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첫 게임으로 강력 추천한다.
스크리블타임
난이도: 하
인원: 4~8
2.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들리는 단어를 그림으로 메모한다
3. 메모한 그림을 보고 단어를 떠올려 맞히면 점수를 얻는다
스크리블타임은 그림으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임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20개의 단어를 모두 그림으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끝난 뒤 펼쳐진 메모장에는 대부분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남발한다. 그렇다보니 그림을 그린 사람조차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어진 번호의 단어를 맞히는 과정에서 친구의 기억을 대신 떠올려 줄 때의 쾌감, 그리고 서로의 그림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이 이 게임의 묘미다. 단어 카드 종류가 워낙 다양해 여러 번 플레이해도 매번 새로운 느낌을 준다. 덕분에 늘 처음 하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보난자
난이도: 중
인원: 3~5명
콩 심어서 떼돈 벌기!
보난자는 협상이 핵심인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각자 콩 농부가 되어 다양한 콩을 심고 수확해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손에 든 카드의 순서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 차례가 오면 반드시 손에 든 맨 앞 카드를 심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차례가 오기 전까지 친구들과 끊임없이 협상하며 손패의 순서를 조정해야 한다.
운도 중요하지만, 결국 승패를 가르는 건 말솜씨와 타이밍이다. 솔직히 말해 이쯤부터는 글로 규칙을 읽기보다 설명 영상을 한 번 보는 편이 훨씬 빠르다. 다만 확실한 건,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정말 실감 나는 거래의 현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웃고, 떠들고, 때로는 과몰입하며 귀여운 콩 카드들과 함께 치열한 협상을 즐겨보자.
BANG
난이도: 상
인원: 4~7명
서부극 테마의 마피아 게임. 그리고 나를 본격적으로 보드게임 세계에 입문하게 만든, 인생 게임이다.
뱅은 보안관, 부관, 무법자, 배신자 총 네 가지 직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안관만 정체를 공개한 채 게임을 시작하며 나머지는 자신의 역할을 숨긴 채 플레이한다. 부관은 보안관을 지켜야 하고, 무법자는 보안관을 제거해야 하며, 배신자는 모두를 제거해야 한다. 보안관이 죽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이 게임에는 수많은 카드가 존재한다. 기본 공격 카드인 ‘뱅’, 방어 카드 ‘빗나감’, 전체 공격 카드 ‘인디언’과 ‘기관총’, 상대를 가두는 ‘감옥’,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까지. 카드 하나하나가 판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외에도 정말 카드의 종류가 다양하다.
처음에는 룰과 카드 효과를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적응하면 쉴 틈 없이 몰입하게 된다. 거짓말과 눈치, 그리고 과감한 선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뱅만의 매력이다. 익숙해질수록 더 짜릿해지는 게임이라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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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글에서 언급하지 못한 보드게임이 셀 수 없이 많다. 스플렌더, 달무티, 딕싯, 타코캣치즈피자, 블리츠, 5초 준다, 금지어 게임, 선물입니다, 티켓 투 라이드, 카탄까지. 언젠가는 보드게임 2탄으로 더 많은 게임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익숙한 할리갈리, 부루마블, 루미큐브에서 잠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게임을 경험해 보길 권한다. 가벼운 모임부터 진득한 밤까지. 그날의 목적에 맞춰 테이블 위에 올려보자. 보드게임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