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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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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비>는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세계, ‘정경유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로 슬쩍 비틀어 풀어낸다. 정치, 기업, 연예계까지 뒤엉킨 부정한 거래의 축소판이 골프장이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극은 하정우가 연기한 기업 대표 창욱이 고위직 공무원을 접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각 인물은 로비의 여러 얼굴을 상징한다. 과장되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목격 가능한 부조리의 단면들을 캐릭터에 입혀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최실장(김의성)은 기득권 남성의 불쾌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넘는 역함을 느끼게 만든다. 어린 여성에게 추근댐을 일삼는 이 인물은 가볍게 그려지지만 단순한 악역 보다도 지금 이 사회의 도덕적 결핍자들을 응축한 존재처럼 그려진다. 영화는 이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유머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캐릭터의 전형성과 과장을 통해 웃음과 불쾌함이 동시에 발생하도록 구조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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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얼굴로 읽는 이중성의 세계


 

<로비>는 하정우 감독의 연출작이자, 그의 넓은 인맥이 총출동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정우, 이동휘, 박병은, 김의성, 강말금, 차주영 등 이름만으로 기대를 모으는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지만 그 캐릭터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해온 그 배우의 ‘전형적인 역할’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신선함을 희생한 선택이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단연코 호식(엄하늘)이다. 시작은 낙하산으로 등장하지만 점차 극에서 의외의 균열을 만드는 역할로 작용하는 호식은 순진한 듯 똑부러지고 멍청한 듯 정확히 핵심을 찌른다. “더러운 일도 깨끗하게 잘 합니다”라는 그의 첫 대사는 그의 행보와 이 영화의 풍자적 기조를 집약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또한 권력을 갈망하는 인물들로부터 일관된 텐션을 유지한 조장관 역의 강말금 배우는 과장된 연기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연기를 선보이며 후반부 권선징악의 후련함을 배가시킨다. 실제로 알려진 것처럼 배우들 사이의 친분에서 비롯된 케미스트리가 매우 자연스러워 대사 하나하나에 살아있는 리듬감, 티키타카가 느껴지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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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맛과 대사로 끌고 가는 블랙코미디의 리듬


 

러닝타임이 길지 않아 영화는 대사로 대부분의 흐름을 끌고 간다. 쉴 틈 없이 오가는 말맛, 뜻밖의 드립, 그리고 과장된 리액션은 이 장르가 가진 유쾌함을 살리는 동시에 감독 하정우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말맛에 의존하는 블랙코미디답게 대사의 촘촘함은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특히나 발화 속도가 빠르고 대사 전달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케이크, 오픈런, 브랜드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키워드들이 메타포로 활용되며 서사에 유머와 풍자를 입히는 방식은 여전히 흥미롭다. 진프로(강해림)의 자부심인 골프는 접대와 뇌물의 수단이 되어 추락하고 창욱이 사오는 망고무스코코넛케이크는 처음에는 로비의 도구였지만 어떤 순간에는 ‘진심’을 담는 상징으로 반전되기도 한다. 이런 전환은 이 영화가 코미디이면서도 여전히 인간 군상들의 인간적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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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규칙 속, 결국 되돌아오는 퍼팅 한 번


 

<로비>는 기발한 구성이나 대단한 반전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구성, 익숙한 캐릭터, 예상 가능한 결말이 다소 단조롭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장르의 성격과 캐릭터 간의 케미, 현실과 풍자를 잇는 연결 고리들 덕분에 후반부에 이르면 의외의 후련함을 준다. 특히 부조리한 로비 세계에 빠져 있던 창욱이 이탈하며 보여주는 결단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상상 속의 정의이기에 오히려 더 깊은 씁쓸함과 함께 관객의 가슴에 오래 남는다. ‘로비’라는 제목은 단지 뇌물과 접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호의를 가장한 속셈, 명분을 가장한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그것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틀린 발버둥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발버둥 속에서 아주 드물게, 단 한 번이라도 공이 곧게 나아가는 퍼팅을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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