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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쇼 뮤지컬 〈물랑루즈〉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작품이었다. 화려함과 유명 팝송, 강렬한 비주얼로 요약되는 이 작품은 언젠가 한 번쯤 보게 될 공연 목록에 머물러 있었을 뿐, 적극적으로 선택할 계기는 없었다.

 

쇼 뮤지컬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좋은 기회로 크리스마스에 엄마와 함께 블루스퀘어 대극장을 찾게 되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웅성임 속에서 ‘아, 정말 오랜만이구나’라는 감각이 먼저 들었고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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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대극장, 에너지

 

막이 오르자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에너지였다.

 

영상이나 음원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바로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움직임의 힘을 느꼈다. 배우들의 몸은 쉼 없이 움직였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객석까지 전달된다. 파이팅 넘치는 군무와 생동감 넘치는 동선은 공연예술이 왜 여전히 ‘라이브’여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사실 너무 오랜만에 대극장을 찾아서, 단순히 잘 만든 공연이라는 느낌보다는 한동안 공연을 현장에서 보지 않았다는 시간의 간극이 이 경험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공연을 ‘본다’기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와, 이게 대극장 보는 맛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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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

 

〈물랑루즈〉는 대극장의 화려함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거대한 무대 장치, 눈을 압도하는 색채, 과감한 조명 연출과 의상, 화장까지 모든 요소가 화려함을 향해 수렴한다. 자칫하면 과하다고 느껴질 법한 이 구성은, 대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중요한 점은 이 화려함이 정지된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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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각적 요소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결합되며 끊임없이 변한다. 군무는 인원을 채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무대의 크기와 밀도를 체감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화려함은 결국 사람의 몸을 통해 완성되고,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공연 전체를 지탱한다. 이때 화려함은 부담이 아니라 활력이 된다.

 

 

 

익숙한 음악, 다시 듣게 되는 방식

 

인상 깊었던 지점은 익숙한 팝송을 재구성한 음악이었다. 개인적으로 팝 음악에 친숙한 편은 아니지만, 공연 내내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리듬은 분명 어딘가에서 들어본 기억을 불러냈다. 여러 곡이 하나의 흐름으로 엮이며 극의 속도를 밀어 올리는 방식은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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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로 자주 언급되는 지점은 ‘아는 노래의 나열’이다. 그러나 〈물랑루즈〉는 곡과 곡 사이를 편집하고 재배치함으로써, 음악을 극의 동력으로 사용한다.

 

특히 한국어 가사는 이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익숙한 노래를 한국어로 듣는 것이 어색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선택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고 느꼈다. 모든 관객에게 동일한 언어로 감정을 건네는 방식은, 빠른 전개 속에서도 서사를 놓치지 않게 한다.


〈물랑루즈〉의 서사는 단순하다. 사랑과 욕망, 환상이라는 구조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단순함을 숨기지 않고 감각의 밀도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객석에서 생각할 틈을 주기보다는, 빠르게 흘러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를 보면서 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다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화려함은 피로가 아니라 에너지가 될 수 있고, 단순함은 지루함이 아니라 집중력이 될 수 있다. 관객의 반응을 흡수하며 더 크게, 더 빠르게 달려가는 무대는 대극장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이 이유들이 대극장 공연이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번 공연은 공연예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야기와 '반가워, 오랜만이야!' 하고 웃으며 말을 건네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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