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의 전성기를 묻는다면, 한 치의 고민 없이 3세대라 말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2010년대 수많은 소녀들의 마음을 훔친 아이돌 그룹, EXO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엑소는 7년만에 '2025 멜론뮤직어워드'에 출연해, 그 시절 EXO-L의 심장을 다시금 뛰게 했다.
바야흐로 2013년, 늑대와 인간의 경계에서 사랑을 택하며 당차게 등장한 열두 명의 남자들은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일명 'K-POP의 애국가'로 불리는 엑소의 「으르렁」이 수록된 정규 1집 리패키지 앨범 『XOXO(Kiss&Hug)』는 엑소만의 차별화된 매력으로 글로벌 음악 팬들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해당 앨범의 타이틀곡인 「으르렁」은 중독적인 멜로디와 재치있는 가사, 무대 콘셉트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곡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토록 완벽한 타이틀곡 뒤에는 이 앨범의 진짜 매력인 보석같은 수록곡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옥같은 노랫말로 앨범의 서사를 완성시킨 11곡의 수록곡은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지금의 엑소를 있게 한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She's my 「Black Pearl」
6번 트랙에 수록된 「Black Pearl」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부르는 강렬한 뱃노래를 연상시키는 비장한 리듬감이 살아있는 곡이다. 곡의 전반을 지배하는 묵직한 리듬은 배 위에서 노를 젓는 듯한 일정한 호흡을 만들어내며, 청중을 순식간에 심해의 항해로 이끈다.
웅장한 비트 위로 얹어진 멤버들의 보컬은 거친 파도를 잠재우는 항해사의 외침처럼 힘이 넘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러한 현대적인 뱃노래가 엑소만의 신비로운 세계관과 만나 한 편의 서사를 완성했다.
왈츠처럼 사뿐히 앉아 눈을 뗼 수 없어, 시선이 자연스레 널 따라가잖아
그루브한 드럼과 섬세한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엑소의 「나비소녀」는 부드러운 악기 소리와 개성있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곡 전체에 세련된 감각을 불어넣는다. 특히, 피아노 선율 위로 흐르는 멤버들의 보컬은 마치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슬픈 왈츠처럼 우아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곡의 진가는 무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부드러운 춤선과 강렬한 감정이 교차하는 군무는 「나비소녀」가 단순히 발라드를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임을 증명한다. 덧붙이자면, 엑소 멤버 백현의 무대 직캠 영상을 통해 보여진 몽환적인 몸짓이 마치 한 편의 무도회를 연상시키며 많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 있다.
난 너를 지키는 저 빛의 기사처럼 「3.6.5」
엑소의 음악은 대개 사랑을 노래하지만, 이 곡만큼은 우리들의 삶을 위로하고 소소한 응원을 건넨다. 곡의 도입부 가사인 '세 번까진 부딪혀봐, 여섯 번쯤 울지라도, 다섯 번 더 이겨내면 끝이 보이기 시작해' 라는 가사는 필자의 고단했던 입시 시절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실제로 내 옆에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그들을 응원하듯 가수도 팬들의 앞날을 간절히 응원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다.
같은 나라에 태어나서, 같은 언어로 말을 해서, 참 행운이야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와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Lucky」는 맑은 날씨와 기분에 들뜬 소년의 순수한 마음을 그린 곡이다. 이 곡은 엑소가 팬들에게 건네는 설레는 고백과도 같아서, 가수와 팬의 관계에 대입할 때 그 진심이 더욱 짙게 다가온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국적 팬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서, 같은 언어로 말을 해서' 라는 가사로 국적을 초월한 유대감과 공감을 이끌어낸 점이 이 노래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역설이자 감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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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한 살 무렵, 엑소를 열렬히 좋아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부정했던 적이 있다.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지금보다는 삶이 나아졌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후회였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에 무언가를 그토록 뜨겁게 좋아해본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 내 안에 남은 이 푸릇푸릇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엑소엘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더이상 부끄러움이 아닌 커다란 자부심이 되었다.
오랜만에 '멜론뮤직어워드' 무대에 선 엑소를 보며, 잊고 지냈던 여중생 시절의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엑소의 「으르렁」 전주가 울려펴지는 순간, 그 시각 고척돔을 가득 채운 함성과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즐기던 타 아티스트들의 모습이 마음 속에 선명하게 다가왔다. 화면을 뚫고 전해지는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는, 그곳에 있는 모두와 연결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엑소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이 황홀한 감정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내 생애 첫 '덕질'이 엑소라서 참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