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섯 명의 배우가 있다. 그들은 때로는 젊은 남자이고, 때로는 예순이 넘은 여자다. ‘황금용’의 요리사이기도, 저가 항공사의 승무원이기도 하며, 베짱이였다가 어느새 지독히 늙은 할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여기는 대한민국 안산 다문화 거리 위치한 타이-차이나-베트남 식당 ‘황금용’이다. 북적이는 식당 구석 비좁은 주방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삶. 7개의 파편적인 에피소드와 48개의 장으로 구성된 연극 <안산, 황금용>은 단 여섯 명의 배우를 통해 현실의 비극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빨간 냅킨에 싸 온 이가 놓여 있습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이에 난 구멍이 보입니다. 검게 썩은 구멍이 앞니를 관통했습니다.”
오늘도 몰아치는 주문에 분주한 ‘황금용’의 주방. 한 남자가 볼을 부여잡은 채 고통을 호소한다. 이가 너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울부짖는다. 그의 이름은 ‘꼬마’.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다. 주방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불릴 뿐이다. 주방 사람들은 꼬마가 울든 말든 요리하기에 바쁘다. 빨리 일하라며 꼬마를 다그친다. 하지만 꼬마는 치과에 갈 수 없다.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이다.
<안산, 황금용>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꼬마는 자신의 여동생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하지만 넓은 땅에서 동생을 찾는 건 쉽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그는 황금용의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다. 그리고 이미 심하게 썩어버린 이빨을 부여잡고 계속해서 아픔을 호소한다. 그럼에도 치과에 갈 수 없다. 그는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주방 직원들이 선택한 방법은 파이프렌치로 꼬마의 이를 뽑아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식당 앞 식료품점에서 사 온 고량주를 꼬마의 입에 들이붓는다. 꼬마는 울며 뱉어낸다. 긴 실랑이 끝에 결국 이빨이 뽑혔다. 성공한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뽑힌 이빨은 하늘 높이 날아 손님의 음식 위에 떨어지고, 그대로 서빙된다. 그 음식은 한 승무원의 앞에 놓인다.
한편, 꼬마의 입에선 피가 멈추지 않는다. 끝없이 흐른다. 결국 그는 과다 출혈로 쓰러지고, 동생을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비극의 정점이다. 놀란 주방 직원들은 깊은 밤 다리 위에서 그의 시신을 던지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불행은 이주민들만의 몫이 아니다. 황금용 주변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 역시 어둡다. 걸음조차 시원치 않은 노인, 바람난 아내에 분노한 남편,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젊은 커플, 장거리 비행에 늘 지쳐있는 승무원들까지. 누구 하나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

수많은 비극을 그려낸 <안산, 황금용>에서 꼬마의 죽음 외에도 손에 꼽을 만한 비극이 있다면 단연코 ‘개미와 베짱이’다. 우화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의 비극, 바로 성매매다. 직원들이 고량주를 사 온 바로 그곳. 황금용 맞은편 식료품점에서는 성매매가 이루어진다. 상대는 베트남 여성이다.
먹을 것이 없어 추위에 떨며 개미의 집을 찾은 베짱이는, 결국 개미에 의해 팔려 간다. 베짱이는 개미의 집 어딘가에 감금된 채 세상이 아직 겨울인지 아니면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억지로 맞이한다.
베짱이를 찾는 이들 가운데에는 앞서 등장했던 걸음조차 시원치 않은 노인과 바람난 아내에 잔뜩 분노한 남성이 포함된다. 아이러니하다. 불행 속에 놓여 있던 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더 나아가 여성의 존재를 철저히 도구화하여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

무거운 소재가 반복되는 만큼 이 작품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낼수록 연극을 바라보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꼬마의 썩은 이빨을 서빙 받은 승무원은 이를 주방에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자신의 손수건에 이빨을 싸 집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그것을 입안에 넣어 혀로 굴려본다. 피 맛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끝없이.
그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마치 현실을 곱씹는 행위처럼 보인다. 누구의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썩은 이빨. 결코 음식에서 나와선 안 되는 이 이질적인 존재는 마치 어떻게든 한국 사회에 속하려 애쓰다 끝내 병들어버린 이주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배우들이 단순히 대사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직접 지문을 읊는다. 관객은 마치 그들의 대본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 비극을 한 발짝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대한민국 안산 다문화 거리 위치한 타이-차이나-베트남 식당 ‘황금용’. 수많은 비극과 혐오가 물든 이곳. 이곳은 바로 현실이다.
사진 출처 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 © 윤헌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