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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놓인 포스터를 보았을 때는 이것이 한 가족을 둘러싼 역동과 갈등과 흔들림을 다룬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을 주제로 삼는 영화란 대개 그렇기 마련이니까. 함께 있는 동시에 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리멸렬하게 갈라져 싸우다가도 종국에는 아예 남처럼 돌아서질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명한 영화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몸소 열어 본 영화는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서로 다른 세 ‘가족’들의 세 가지 이야기로 엮여 있다. 세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가족’의 집으로 향하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함께 마시고, 집을 뒤로한 채 떠나오게 된다. 그것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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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아버지’의 가족은 딱히 남보다 못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이는 아니다. 이들 사이에서 달리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싸움, 배신, 눈물, 고함 같은 것들은 끼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남보다 크게 못한 사이가 아니라 해서 서로를 아끼는 다정한 가족인 것은 또 아니다. 이들은 기묘하다면 기묘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그런 가족의 모습이다. 함께 있으면 편하지 않고 왜인지 모를 긴장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가족. 솔직히 고백하자면 서로 영 이해가 되지 않는데, 꼴에 피붙이는 피붙이라고 상대에게 갖는 껄끄러운 마음이 영 떳떳하게 느껴지지는 못하는 애매한 가족. 앞에서는 서로를 보아 무척 기쁘다고 말하지만 뒤로는 그에 정반대되는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가족.

 

아버지의 거실에 걸린 돛단배 그림은 이 ‘가족’의 표상과도 같다. 서로 영 들어맞지 않게 생겨먹은 흰 조각들을 한데 모아 만든 돛단배처럼, 아버지와 두 자녀는 일말의 의무감에 의해 한자리에 꾸역꾸역 모인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모습은 이들이 둘러앉은 작은 테이블의 모습을 닮아 있다. 높낮이도 생김새도 제각각인 컵들에 담겨 나온 수돗물과 차. 삼각형의 작은 테이블 위에 불안정하게 놓이는 동그란 쟁반. 도무지 맞는 구석이라고는 없는 것들을 한자리에 어찌저찌 모아 놓은 테이블. 그 테이블 앞에서는 진짜 롤렉스 시계도 가짜로 둔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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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어머니'의 가족은 훨씬 정제되어 있다. 서로를 향한 눈웃음과 정석적이고 형식적인 덕담, 예의 교본에 나올 법한 행동들. 이들은 결코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거나 결례가 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숨기고 잘 보이려 할 뿐이다. 동생은 어머니를 향해서는 자신이 가져 본 적 없는 새 렉서스 차를 자랑하고, 언니를 향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누려 본 적 없는 꿈 같은 일상을 자랑한다. 언니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다 말고 화장실로 향해 거울 앞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점검한다. 어머니는 두 딸에게 결코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


이들은 완벽히 준비된 애프터눈 티 테이블 같은 가족이다. 아름답게 정렬된 디저트들, 찍어낸 듯이 똑같은 찻잔과 찻받침. 그러나 암만 똑같은 잔에 똑같은 밀크티를 따른대도, 그 밀크티를 마시는 저마다의 방법이며 속도는 터무니없이 제각각인 그런 티 테이블. 이 테이블 앞에서 가짜 롤렉스 시계는 마치 진짜인 양 내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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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남매'의 가족은 가까우며 친밀한, 애정에 기반한 가족이다. 서로는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이해한다. 남매가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에는 똑같은 물이 담긴 똑같은 유리잔, 똑같은 커피가 담긴 똑같은 커피가 올려져 있다. 그러나 이 완벽하게 합치된 테이블에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잔이 오직 둘뿐이라는 것이다.

 

원래는 넷이어야 할 커피잔은 둘밖에 남지 않았다. 부모님의 흔적으로 가득해야 할 집에는 텅 빈 공간을 부유하는 먼지와 야속하게 내려앉는 햇살밖에는 남지 않았다. 곁에 머무를 때에는 기쁨과 안정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가족이, 곁을 떠난 이후에는 슬픔과 절망의 뿌리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슬픔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가족의 모습이란 찾기 몹시 드물다. 어쩌면 그런 가족이란 아예 불가능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모든 이는 자신의 가족에게 언젠가는 슬픔이 된다. 다만 슬픔이 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애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불화가 스민 가족은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슬픔이 된다. 그러나 애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애정이 제대로 잘 들어찬 가족은 끝내 서로의 부재로써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된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빨간색 의상과 소품을 하나씩 착용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의 말마따나 ‘Family Factor’, 가족을 나타내는 명백한 상징이다. 그러나 그 빨간색 중 무엇 하나 같은 빨간색은 없다. 이들은 빨간색이라는 큰 단어로 어찌저찌 뭉뚱그릴 수는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은 저마다 다른 빛깔인 옷을 입고서는, 똑같은 물을 마시면서 물병자리니 수돗물이니 약이니 하는 서로 다른 관념들을 떠올린다.


Blood is thicker than water -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오늘날의 가족은 피라기엔 연하고 물이라기엔 짙어 두 사이 어드메쯤 소리 없이 녹아 있는 무언가는 아닐까. 그러니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면 머릿속에는 세 가족들의 모습만큼이나 복잡한 세 가지 단어의 잔상이 남는다. 피와 물과 테이블과 관련한 기나긴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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