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옴니버스 형식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것은 짐 자무쉬 감독의 1991년 작 <지상의 밤>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국가의 한 택시 안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그 작품은 뭔가 '힙'해보이는 제목에 일어난 대단치 않은 선택이었으나 여운이 일주일을 갔다. 잠시나마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된 기분이었다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런 짐 자무쉬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 개봉한다. 그것도 똑같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바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다.
느릿한 영화다. 영화가 아니라 어떤 가족의 명절 밥상머리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실황을 보여주나 싶을 정도로, 극 속 시간은 관객과 똑같이 흐르고 보고 있는 나는 뻘쭘함에 같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다정해 보이는 영화의 제목을 뒤늦게 다시 생각해 본다. '패밀리'라는 한 단어로 엮이지 않은 이유가 그 뻘쭘함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다른 경험으로 내가 된 우리는, 하루 고작 몇 시간의 만남으로는 딱 남만큼 친하다. 우리를 가족이라고 엮을 수 있는 건 기억의 파편, 그리고 그 파편이 만들어낸 모든 유사한 습관과 취향, 그리고 사랑한다는 마음뿐.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도 사랑이다. 서로 잘 모르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기묘한 관계이자 단위, 바로 가족이다.
3부에 걸친 이 작품은 각 가족을 색깔로 묶는다. 1부와 2부의 가족은 빨강, 3부의 남매는 검정이다. 1, 2부의 가족은 모두 건강히 살아있지만, 3부의 남매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짐을 정리하기 위해 모였던 만큼 홀로 다른 검정이 어쩐지 신경이 쓰인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피로 상징 지어 본다면, 그들의 부재는 심장의 부재나 마찬가지다. 결국 가족이라는 관계가 살아 숨 쉬게 하던 피가 멈추고, 검게 산화된 흔적만이 우리가 한때의 가족이었음을 증명할 것이다. 남아있는 자식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각자의 새 가족을 만들게 될 것이며, 나의 탄생과 부모의 존재로 이어졌던 가족의 형태는 다시 기억의 파편으로 돌아간다.
3부 모두 차 안에서 시작한다는 점 역시 재미있는 부분이다. 차 안에서의 대화는 비교적 진솔하다.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사실을 주고받고, 가끔은 진심으로 웃는다. 부모님과 만났을 때 본인의 근황조차 얼버무리며 억지 미소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어색함이 늙어가는 부모의 어깨에 걱정거리를 얹지 않기 위해 내보이는 은폐라는 점은 어쩐지 슬프다. 관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티가 안 날 수는 없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차가 달린다.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우리는 결국 이별의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느리다고 해서 무거운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공감되어서, 혹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함이 튀어나와서 피식피식 웃음이 샌다. 독특한 작품이다. 웃기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 대사와 상황인데 이상하게 웃기고, 그러다 내 가족 생각에 약간 울적해진다. 왜 이 관계는 영원하지 못할까? 영원히 내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당연하게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너무 낯선 것 같은데, 엄마와 아빠의 익숙한 품이 그립다. 엄마와 아빠는 과거도 제대로 모르는 낯선 존재들인데, 가족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따뜻하다. 형제자매는 조금 밉고 짜증이 나지만, 그런데 가끔 보고 싶다. 이제 잘 모르는데, 사랑은 하는 것 같다. 사랑. 그 단어 하나만 홀로 끝까지 살아남는다.
흔적뿐인 가족이지만 영원한 내 가족. 모든 것이 사라져 이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내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