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1월 중순에 출장 일정으로 일주일 동안 미국 보스턴을 다녀왔다. 그곳과 한국과의 시차는 무려 14시간이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이틀 후 [MUSICSCAPE 그림자의 경계에서]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 공연은 오후 3시에 시작이었으나, 귀국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마치 보스턴의 시간인 새벽 1시 상태에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객석 내부에 입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입장한 순간 들리는 청명하고도 깨끗한 풀벌레소리에 잠이 깼다. '설마 객석에 벌레가 있는건가?' 하는, 몽롱한 상태였기에 할 수 있었던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내 자리를 찾아갔다.
내 자리는 맨 앞 열의 중간 자리였고, 자리를 정비하고 앉으니 풀벌레 소리가 허상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무대의 세팅 자체가 입체음향과 미디어아트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한 번의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었다. 1부는 주로 자연의 풍경을 테마로 한 곡들로 구성되었고, 2부는 1부에서 다뤄졌던 자연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artificial)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주제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공연이 특이했던 점은, 대부분의 공연처럼 공연 시작과 끝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공연의 경우, 어느 정도 곡이 진행되는 것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 이 곡이 곡 끝날 것임을 관객들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이 공연은 (곡 간의 경계는 물론 존재했지만) 곡의 이름과 관련된 자연의 소리가 관객들에게 은은하게 들리는 순간 그 곡은 이미 연주되고 있었다. 그 소리 자체가 연주의 부분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성악음악을 기악음악 보다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취향을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나의 취향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이 공연이 내 취향에 적합한 공연이 아니었기에 아쉬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성악음악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나는 일종의 '확실성'이 있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얘기하면, 기악음악은 나에게 '추상성'을 의미한다. 당연히 누군가에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공감이 될 수도 있을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러하다. 즉, 성악음악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발화 내용을 듣고, 내용이라는 걸 포착할 수 있기에 나에겐 훨씬 편하다. 그와 반대로 기악음악은 (물론 기악음앋도 고유의 언어체계가 있지만) 기악의 언어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 음악이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나는 일종의 낯선 감각을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낯선 감각을 느끼고 있는 김에 그 낯선 감각 자체를 즐겨 보기로 했다. 이때 내가 '낯설다'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지금 이 음악을 듣고 있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다. 기악음악을 감상할 땐 무언가를 떠올리기보단 그 자체로 집중해서 들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기에, 낯선 기악음악의 언어는 나에게 물음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마침 정신 상태도 몽롱한 김에 지금 이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으로 인해 떠오르게 된 생각 자체를 밀고 나가보기로 했다. 자연에 대한 곡들이 계속 들려오면서 나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프랑스의 한 도시 속 장대했던 숲길이 생각났다.
그 길이 생각나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고회로에 기인했다.
나는 5년 전 프랑스의 릴Lille이라는 프랑스 북부 도시를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수업은 고사하고 틈만 나면 가장 큰 공원의 숲을 매일 한 시간이 넘도록 걸어다녔었던 기억이 있다. 그 숲을 그렇게 매일같이 산책했던 이유는, 숲이 주는 고요하면서도 풍요로움이 좋았기 때문이다. 귀국을 하고 나선, 그 이후에 출국의 기회가 없다가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생기게 된 해외 출국의 기회라 기쁘기도 했지만, 장장 13시간의 비행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초행길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비행기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나는 더러 긴장을 많이 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사히 잘 돌아왔다. 무사히 잘 다녀왔다는 안도감이 공연에서 연주되고 있는 숲에 대한 곡을 통해 촉발되었다. 숲이란 그 어느 곳보다도 고요한 곳이지만, 그보다 풍요스러운 고요함을 선사하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무사히 잘 돌아왔음에 안도하며, 그리고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자연의 경계에 나는 그렇게 자연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