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종교가 없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니까. 그래도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만큼, 각자 개인적인 느낌이나 선호 정도는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절에 가는 걸 좋아한다. 자연 속에 놓인 고즈넉한 전통 사찰, 은은한 향내, 바람이 불면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 목탁 소리, 불경 외는 소리. 그 안에 속해 있으면 뭐라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안정감이 나의 내면에서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한때 젊은 층 사이에서 템플 스테이가 힐링 체험으로 유행처럼 번졌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테다.

 

하지만 그 복합적인 공간 속에서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고르자면, 그건 불상(佛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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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이름 그대로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상을 말한다. 흙·나무·돌·쇠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크기 역시 손바닥만 한 것부터 낮은 건물만 한 것까지 천차만별이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불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선 오늘날 명확한 기록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통은 1세기경에 인도의 서북부인 간다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석가모니가 자신의 신격화를 금지하였기 때문에 예전 불교 신도들은 부처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게다가 그들 역시 신적인 존재를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석가모니 사망 후 약 500년간은 ‘무불상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1세기경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이 예수 등 신(神)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모시는 모습이 흘러 들어오자, 결국 불교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 불상을 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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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대부터 꾸준히 불교문화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제작된 불상도 많은 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만 가봐도 불교 공간이 따로 있고, 그중에서도 또 불상 공간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역사책에도 흔히 실리므로 살면서 불상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불상을 보게 되든지 간에, 그 뜻을 이해하려면 간단하게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인(手印)이다.

 

조각이든 그림이든, 부처의 손을 본 적이 있는가? 어쩐지 무릎에 다소곳하게 얹고 있었던 것 같다는 어렴풋한 잔상 정도만 기억날지도 모른다. 수인이란 부처나 보살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밖으로 표현하기 위해 열 손가락으로 여러 손짓을 하는 상징적인 행위다. 종류는 꽤 다양한데, 석가모니불의 대표적인 수인은 다섯 가지 정도가 있다(부처마다 고유한 수인이 정해져 있어서 어느 한 부처의 수인을 다른 부처에게 묘사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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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위로 해서 왼손은 배 앞에, 오른손은 그 위에 놓고 엄지손가락을 맞댄 ‘선정인’.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늘어뜨린 ‘항마촉지인’.

 

두 손가락을 둥글게 말고 왼손은 배 쪽에, 오른손은 가슴 쪽에 세우는 ‘전법륜인’.

 

손바닥을 펴서 어깨 위까지 들어 올린 ‘시무외인’과 아래로 늘어뜨린 ‘여원인’.

 

나는 불상을 볼 때 조각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긴 눈에 뚜렷한 코, 인자한 미소를 담고 있는 둥근 얼굴을 가만 응시하고 있으면 왜인지 금방이라도 움직이며 말을 걸 것만 같은 자연스러운 생명력이 느껴진다. 부처의 이마 한가운데에 박힌 백호가 마치 달처럼 휘영청 빛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가끔 크기가 크거나 어디를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생긴 불상을 만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신비로움과 알 수 없는 위압감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입을 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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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불상이 하나 있다. 쇠로 만든 이 부처는 높이가 2.88m에 무게가 6.2톤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라고 한다. 고려 10세기경에 만들어졌고,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한 절터에 있던 것을 발견해 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불상이 전시된 곳에 가보면 공간 전체가 어두운 가운데 각 불상을 향해 약한 조명 정도만 비추어 있다. 그 은은한 불빛 아래 경건하면서도 웅장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게다가 빛이 등 뒤로 둥그렇게 비치는 모양새라 언뜻 휘광을 두른 것처럼도 보인다. 수인은 왼쪽은 무릎 위, 오른손은 내리뜨린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어, 깨달음을 방해하는 악마들을 물리치고 인간 내면의 욕망을 완전히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공간 안에는 여러 불상이 있지만, 희한하게도 유독 이 철 불상이 항상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이 철불을 보기 위해 박물관에 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거의 3m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에서 나오는 위압감도 위압감이지만, 가장 압권인 것은 게슴츠레하게 뜬 채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다. 이 부처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고, 다른 곳을 응시한다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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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결국은 그것을 들여다보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웅장한 몸체 앞에 서서 그것을 올려다보면, 고요한 위압이 느껴지면서 반대로 머릿속은 가벼워진다. 잡생각도 들지 않고, 사방은 완벽히 고요해지며, 부처의 시선 아래 놓인 나만이 오롯이 이 세상에 존재함을 느낀다.

 

그리고 부처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한 미소를 살포시 지으며 내 앞에 앉아 있다. 그러면 문득 자연스럽게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 굳이 이렇게 힘들게 살까?’

 

그 순간 모든 일이 거짓말같이 가벼워지고 불안이 잠잠해진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으며 모든 일은 지나가게 되어 있는 법이다. 큰일이라고 여겼던 일들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일뿐, 결국은 나 역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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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했던 상설 전시인 ‘사유의 방’은 왜 그토록 열풍이 일었을까? 그 거대한 공간 안에는 사실 반가사유상 두 점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서서 볼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긴 두 부처를 보며 같이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곳엔 한 자리에 그대로 몇 시간이고 머무르는 사람도 많다. 그들 역시 겉으로는 불상을 보지만 사실은 그를 통로 삼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오늘날을 ‘불안의 시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아니면 ‘경쟁의 시대’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이 시대를 묘사하는 말로 긍정적인 단어가 오는 것을 본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아갈까?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은 텅 빈 허례허식, 이런 것에 왜 그렇게들 얽매일까? 심지어 언젠가부터는 서로의 불행의 크기마저도 비교하기 시작해 ‘불행 배틀’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나 역시 한때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그런 마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해본다. 과연 내가 가진 불안이 정말로 불안을 일으킬만한 무언가에서 오는 것일까? 혹은 마음이 조급해 거짓 불안을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다른 사람을 불필요하게 의식하여 내 것이 아닌 불안까지도 끌어안고 있지는 않은가? 그 부분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만 있다면 많은 고통이 순식간에 옅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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