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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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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참 많이 노래했으나 이병률은 사랑하면서도 자주 떠나는 사람이다. “시집 출간 제안을 받고 바로 눈 내리는 곳으로 떠났다”는 그에게 사랑은 어디선가 머무는 정착이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인 셈. 그러므로 그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라고 썼다면 그것은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으나 끝내 떠나야 했던 슬픈 여행의, 혹은 방랑의 기록일 거라는 예감.


이병률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문학과지성사, 2025)를 읽는다.


 

미술관의 두 사람은 각자

이 방과 저 방을 지키는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을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다

자신들은 서로를 깊게 바라보다

만지고 쓰다듬는 일로 바로 넘어갔다


(중략)


그림이 그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두 사람을 그림 안에 넣겠다고

그림이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 <어떤 그림> 중에서

 

 

우선 사랑에 대해 말해보자. 사랑이란 각자가 단단히 지키고 있던 방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 방과 저 방을” 지키다가, 너는 “저 방과 이 방을” 지키다가,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출입을 막아서던 우리가 어쩌다 또 다른 방에서 마주친 순간 좁혀지는 시간이다. 공간(“이 방과 저 방”)과 시간(“바로”)을 뛰어넘으며 “만지고 쓰다듬는 일로 바로 넘어”갈 만큼 다급해지는 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을 만지지 못하게” 여전히 막아두는 일. 그렇게 사랑이 시작됐을 때, “두 사람을 그림 안으로 넣겠다고” 그림이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왜 하필 그림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필사적으로 쫓아야 하는가.


 

이 두 사람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습니다

이어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갑니다


먼저 누군가 말을 꺼내도 될 것 같은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아무도 그 길을 이탈하지 않습니다


(중략)


한데 두 사람은 서로 거슬리거나 맞지 않거나

아예 온도가 다르거나

그러므로 지워내거나 도려내거나

섞어도 섞이지 않을 국면에 대해 생각하는 중일까요


- <공원 닫는 시간> 중에서

 

 

사랑이 시작된 순간 앞으로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가게 될 테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아무도 그 길을 이탈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은 온다는 것. 나와 당신이 아무리 “섞어도 섞이지 않을 국면”을 맞닥뜨리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서로 다른 온도를 느끼게 된다는 것. 사랑의 순간이 지나가면 이별의 기간이 온다. 오직 그림 안에 포획된 사랑의 순간만이 찬란했던 그 모습 그대로 멈춰 설 수 있고, 그 아름다움은 영구해진다. 그래서 그림은 너무 늦기 전에 사랑의 순간을 쫓아다닌다. ‘그림 같다’는 말은 사랑의 순간이 비추는 아름다움 아래 그 뼈아픈 유한성을 숨겨놓은 시의 언어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전문

 

 

사랑의 진실에 대한 난처한 주석이 여기 있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했었다면, 우리는 배고프고, 울고, 부족해진다는 것. 당신이 필요해서 오직 당신만으로 채우는 순간들이 마치 영원처럼 이어지리라 믿으며 붙잡으려 애쓴다. 사랑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맘대로 끝낼 수 없게 만들고, 부족하기만 한 스스로의 “자격을 떠올”리며 자책하게 만들고, 끝내 나를 잃고 당신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하게 만든다. 영원이 없는 것에 대한 영원을 꿈꾸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또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하면서 사랑한다. 사랑은 나를 자기 자신의 ‘적’(敵)으로 만든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나타나 사랑하지 않았던 그간의 ‘나’를 해치게 만드는 일이다. 너무 철저하게 아픈, 나를 살게 하면서 동시에 짓밟는 나와, 나의 친애하는 적. 그러니 영원한 사랑을 믿는 것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아름다움을 찾았다가 결국 막막함을 느끼고 아쉽게 돌아오는 것. 오가는 그 길에서 자주 헤매는 것. 사랑의 유한성은 여행과 닮았다. 여행은 정해진 길보다 정해야 할 길이 많고, 정답인 길보다 오답인 길이 많은 어딘가를 향해 떠나가는 일이다. 사랑과 여행이 비슷하다면, 우리는 언제나 정답을 따라 정해진 길을 가는 안전한 사랑을 택해야 하는 걸까. 영원한 사랑의 믿음을 버려두고, 가장 정확한 지도만 믿으며, 언제든 돌아올 배낭여행처럼 가볍게 떠나야 하는 걸까.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마저 넉넉한 만족감으로 아프지 않아야 하는 걸까.


 

내 앞으로의 소망 하나는 길을 자주 잃게 해달라는 것


절대 길을 안 잃어본 사람이라서

길을 잃을 것 같으면 아예 발길을 돌려 되돌아 나오거나

잃은 길을 땅바닥에 화로로 그려본 다음

그 길을 가뿐히 빠져나온다는 것

그러니 그 못된 버릇을 영영 잃게 해달라는 것


- 「명령」 중에서

 

 

여행도 사랑도, 길을 잃는 행위다. “길을 잃을 것 같으면 아예 발길을 돌려 되돌아 나오”는 사람은 절대로 길을 잃지 않겠지만, 잘 아는 길로만 다닌다면 그 길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마주칠 수 없다. 언제나 사랑의 순간 앞에는 새로운 길이 놓인다. 이 길이 오답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오답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설렘이 동시에 찾아온다면 기꺼이 길을 잃어보라는 것. 언제든 “그 길을 가뿐히 빠져나”올 준비를 하는 것은 복잡과 불편과 불안 속에 숨은 사랑의 찬란한 가능성을 정확하게 무너뜨리는 “못된 버릇”이다. 오답이 결코 없는 그런 여행은 서둘러 돌아가도록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제1명령은 언제나 길을 잃을 각오를 하라는 것이다. 사랑을 여행하는 중에 길을 잃었다면 그 길의 끝까지 걸어가 오래도록 머물면 된다. 그곳에서 당신과 영원히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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