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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수영을 하다가 우연히 들은 말이 있다.


"저 아줌마 머리카락 다 삐져나왔네."

 

아직 '아줌마'라는 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기에 순간 꽤 충격이었다. 아마 그냥 수영하는 뒷모습만 보고 착각해서 한 말이겠지…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쓰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줌마'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이후에는 '할머니'라고 불릴 테고. 솔직히 아직은 멀게 느껴지지만, 노후에 대한 생각은 자꾸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 내 모습, 혼자 늙어갈지도 모르는 시간에 대해.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면 언젠가 혼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 싶어 외롭고 불안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미래를 꿈꾸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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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는 내가 꿈꾸는 노후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연극은 2025년, 지금의 현재를 담은 1막과 2058년, 함께 늙어가는 미래가 담긴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는 지금을 살아가는 배우들의 모습과 그들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뒤섞여 흐른다. 2막에서는 2025년에 함께 해당 공연을 한 인연으로 배우들이 함께 지내는 2058년,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2058년의 미래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 하나가 벌어지는데. 바로 '동거인의 죽음'이다.

 

 

 

2025년의 여자들



 

어떤 여자는 노벨상을 받고

어떤 여자는 아파트에 살고


어떤 여자는 행복하게 살고

어떤 여자는 아직까지 살고

 

 

극에는 유림, 은희, 화정, 대진, 미영, 순미, 그리고 이 작품을 연출한 이오진 작가까지 다양한 연령층 지닌 일곱 명의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인물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고 그래서 더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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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은 다르지만 결국 이 여자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고 어떻게든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고 불안을 견디며 현재를 살아가고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게 되지만 행복을 바라며 오늘을 살아간다.


이 극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던 이유는 아마 나 역시 2025년을 살아가는 여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때로는 불안해하고. 아무 이유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보거나 마트 구경을 가고 맛있는 걸 먹으며 위로받는다. 내 표정이 어떤지 잘 모른 채 홀로 거리를 걸을 때도 있고 때때로 떠나버린 사람들이 불현듯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여러 이야기와 음악이 혼란하게 섞인 듯한 이 극이 어지럽게 느껴지면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1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배우들이 무대 중앙으로 모여 2025년부터 2070년까지 흘러가는 시간을 몸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있다. 젊었을 때의 움직임에서 점점 노년의 움직임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마치 나이가 들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겨우 움직이는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다른 여자들, 다른 사람들이지만 결국 모두 똑같이 늙어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까?

 

 

 

2058년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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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은 2058년, 근미래를 보여준다. 가족의 형태가 훨씬 다양해지고 생활동반자법을 넘어서 사회적 가족법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한 미래. 이 미래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언젠가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필요한 미래'에 가깝다.


2025년에 함께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공연을 했던 배우들은 시간이 흘러 법적으로 '사회적 가족'으로 인정받는 관계가 된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살고 서로를 돌보고 함께 늙어가는 가족 말이다.


그 모습이 무대 위에 펼쳐졌을 때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부럽게 느껴졌다. "나도 저런 노후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만큼.


하지만, 이 평온한 공동체에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유림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은 갈등에 부딪히는데 유림의 남은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모두 각자의 이유로 조금 더 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재산 문제는 현실에서도 가족 간 갈등의 대표적인 이유다. 사이가 좋았던 가족이 이 문제로 인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면서 "이들도 결국 이렇게 갈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지켜보게 됐다.


그런데 이 극이 흥미로운 점은 이 무거운 갈등을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도 많았다. 유림이 모두의 꿈에 각각 찾아왔지만 모든 이들이 "내 꿈에만 나왔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상상하는 장면. 또한 그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다투려 할 때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났던 은희가 등장하는 장면이 그 예이다.


특히 죽은 은희가 튀어나와 남은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는 장면은 너무 재밌으면서도 귀에 쏙 박히는 깊은 메시지가 있었다.


 

하나를 갖고 둘을 갖지 못하는 걸 남 탓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다 함께 살 수 있다.

 


단순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말.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남을 탓하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이 함께 오래 살아가는 법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크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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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오래 기억에 남는 데 재산 분배 문제를 무사히 넘긴 후 여전히 함께 살기로 선택한 여자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다. 피로 이어진 가족도 아니고 결혼으로 맺어진 사이도 아니지만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고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지도 모른다. 외롭고 불안한 순간이 올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꿈꾸게 된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는 미래. 함께 늙어갈 사람들과 하나의 식탁을 공유하는 미래를 살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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