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EUNU]
아직도 다 보지 못한 세상이 있다.
'한 떨기 꽃이라 하길래, 나도 언젠간 맺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끝내 넌 맺지 않았다. 다시 씨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여겨왔는데. 한 뼘 남짓했던 곳에서 피워냈던 일들은 이제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얼마나 더 견뎌야 다음 세상을 만나게 될까. 내일은 참으로 냉정해서 성장통 없이 함부로 그 존재를 내비치질 않는다. 나를 담아주었던 세상을 또 원망했다. 발 굴러낼 수 있음에 감사한 줄 모르고.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물결이다. 씨앗의 수만큼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흩어진다.
"모든 건 네 안에 있어."
발걸음을 가벼이 하면 꼭 세계가 다가와 초를 쳤다. 어서 머물러 맺으라며 재촉하던 바깥세상의 열매들. 무거울수록 넓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면서, 내게 뿌리내리라 손찌검했다. 한때 피워내고 맺어야만 자라는 길이라고 믿어온 탓인지, 가끔 열매를 따라갔다가 지독한 향을 못 이기고 나오곤 했다. 그 너머엔 매번 재 타는 냄새뿐이었지만, 모두가 잿더미를 파헤치니 그곳이 곧 동산이었다. 그곳엔 아무런 의심도, 물음도 없다. 자신이 재가 될 때까지, 그 위로 먼지가 쌓일 때까지 계속될 뿐이다.
'맺는다는 건 어쩌면 끝을 의미하는 걸지도 모르지.'
머무르는 것이 으스러지는 것보다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서, 재와 별을 구분 지으려 애쓰곤 한다. 나의 보폭대로 나아가 별빛을 담으면 꼭 열매가 다가와 한 마디씩 덧붙였다. 반대로 부서질 듯 공들여 재가 되려 하면 그제야 세상은 나를 반겼다. 내디뎌 온 만큼 이제 정도를 알아서, 당신에게도 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널 기다릴 이유는 없어.'
널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너를 닮을 수 있냐고 물었었지. 그런데 그건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내가 걷는 길이 전부는 아니듯, 마찬가지로 네가 걷는 길이라 해서 우주가 담긴 건 아니겠지. 이제 나에게 물으려 해. 언제쯤 너처럼 홀가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밟는 매일이 적어도 별에 가까운 삶이기를 바라며 날아 볼게. 후회 없이 맺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