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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영화 <고당도>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가짜 부고 문자를 계기로 '가짜 장례식'을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뇌사 상태의 아버지를 병원에서 모시고 있는 간호사 '선영', 인생이 꼬일대로 꼬여버린 남동생 '일회'와 일회의 아내 '효연', 아들 '동호'가 그 주인공이다.

 

일회와 선영의 관계는 첫 등장부터 꽤 명확하다. 텅 빈 주차장을 가로질러 허름한 차가 한 대 달려온다. 일회와 그의 아내 효연, 아들 동호가 선영이 근무하는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많은 주차 자리 중에서도 애매한 자리에, 주차선을 거하게 침범하고는 되는 대로 차를 세운다. 그 어긋난 자리 배치는 이 가족의 현재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딘가 어긋나 있고, 서로의 선을 한껏 침범하면서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관계. 그래, 이게 가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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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면 삼키고 써도 삼킨다


 

이 영화에서 '감'은 그 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반복 등장한다. 처음 효연이 선영에게 건넸던 감은 아직 떫었다. 씹을수록 입 안 가득 번지는 떫은 맛처럼, 그들의 관계도 불편함이 먼저 앞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지난 후 네 사람이 감을 나눠 먹을 때, 그들 누구도 더 이상 "떫다", "달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맛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같은 과육을 함께 베어 물고, 같은 속도로 씹어 삼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진다.

 

영화는 그 순간을 통해 말한다. 가족은 결국, 맛을 맞추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삼켜내는 관계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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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칼코마니 사기극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나는 '일회'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름의 의미가 워낙 노골적이기도 하고, 그의 삶 역시 그 이름처럼 매번 벼랑 끝에서 "한번만 어떻게든 넘겨야지"라는 마음으로 굴러간다. 그는 아버지이면서 아들이고, 남편이면서 동생이지만 어느 역할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다.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떠돌며, 수험생 아들에게 방 한 칸도 마련해주지 못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그의 실수에서 비롯된 상처를 짊어져야 한다.


결국 이 고된 삶은 '가짜 장례식'이라는 사기극으로 이어진다. 꽤나 본격적인 선영의 제안에 누구보다 겁먹고 불안해하는 일회이지만, 사실 판을 키운 장본인 역시 그 자신이다. 순진함과 철없음, 책임감과 무책임함이 뒤섞인 캐릭터이다. 일회는 늘 사랑하고 싶어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같은 형태로 그에게 되돌아온다.


일회의 아들 동호는 마치 철없는 아버지 밑에서 빨리 철든 똑똑한 자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도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일회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했던 행동을 거의 그대로 동호로부터 겪게 된다. 그 순간 속에서 일회는 큰 충격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점에서 관객은 깨닫는다. 닮은 구석이란 이렇게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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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高·苦·故)당도'의 시간


 

가족성은 가장 극단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가짜 장례식을 준비하며 서로의 역할을 재빠르게 맞춰가던 장면들, 그 혼란 속에서도 비뚤어진 호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동호를 사기에 가담시키지 않으려고, 셋이서 그 아이를 택시에 태워 내보내던 순간이 그랬다. 아무리 상처 주고 상처 받아도, 더럽고 비참한 일만큼은 아이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마음. 이 모순적인 보호 본능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진 복잡한 결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가족은 더 엇나가고 더 충돌하며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또 가장 먼저 서로에게 달려간다. 선영이 망설일 때 뛰어들어 아버지를 구했던 일회처럼, 동호 또한 일회에게 뛰어든다. 이런 순간들은 마치 과거가 반복 재생되는 것처럼 겹쳐 보인다. 상처 주던 방식도, 지켜내는 방식도 닮아 있다.


고당도는 단순히 '높은 당도'가 아니다. 떫고, 울컥하고, 익어가고, 상처 내고, 누군가의 부재를 가짜로라도 겪었을 때 도달하는 복잡한 감정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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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국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닮아갈까."

 

"왜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끝내 같은 것을 나눠 먹게 되는 걸까."


가족이라는 이름은 결국, 떫음 끝에 도달하는 단맛의 총합이 아닐까. 삐걱거리고 엇나가면서도, 결국 마지막에 달려가는 이 사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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