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신화를 쓴 영화 <국보>가 국내 개봉했다. <국보>는 이상일 감독의 영화로, 부모를 잃은 소년 키쿠오가 가부키 명문가에 맡겨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부키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진 예술적인 가치에 관해 그 무엇도 알지 못했지만, 영화는 아름다웠다. 어떤 부분에서 아름다움이 전해졌는지, 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가부키와 이방인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꼭 가부키라는 소재를 선택해야 했을까 싶었다. 대중적인 문화예술이라고 칭하기 어렵고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예술인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많은 분야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점점 서사가 진행될수록 가부키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혈연인 후계자와 이방인인 제자라는 관계, 피로 세습되는 예술 분야, 그 폐쇄성 등 영화의 서사가 ‘가부키’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국보>는 가부키의 혈통주의에 대해 비판하고자 제작된 영화일까? 어느 정도 그러한 시선을 느낄 가능성이 있지만, 질문에 답을 내리자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서사가 가부키에서 출발하는 만큼 가부키의 세계가 영화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인인 키쿠오가 가부키 명문가에 맡겨지며 가문 내의 이방인이 된다. 동시에 가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슌스케와의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실력이 뛰어나도 이방인이기에 키쿠오는 그 어떤 자리도 물려받을 수 없다고 여겨지고, 그것이 당연한 세계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가문의 당주인 하나이 한지로는 자신의 대역으로 키쿠오를 택한다. 이에 슌스케가 도망쳐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흐른 탓에 키쿠오가 예명을 받게 된다. 재능이 혈통을 이겼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끝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긍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슌스케가 가문에 돌아오며 키쿠오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것을 기점으로 다시금 상황은 전복된다. 이에 다음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결국, 가부키의 세계에서는 피로 이어진 인연이 전부인 것인가? 한지로의 말처럼 부모가 없는 키쿠오는 그 어떤 무기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피’가 꿈을 저지하는 요인이 된다. 슌스케는 한지로와 같이 당뇨가 발병했고, 가부키를 이어가지 못한다. 그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인물은 가문의 이방인이었던 키쿠오였다.
서사 속에서 친자와 양자로 표현되는, 혈통과 이방인의 대립이 계속해서 역전된다. 철저히 피로 세습되는 문화와 그 폐쇄적인 양상을 비판하고자 한다기보다는 키쿠오가 필연적으로 당면해야 했던 시련을 통해 그의 열망을 부각하고자 함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가부키 세계의 혈통주의는 그가 국보가 되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언젠가 마주쳐야 했고 맞서야 했던 요소이기 때문에 그 결핍의 극복은 서사를 한층 더 극적으로 만든다.
2. 희생과 관계
가부키 세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면 그저 가부키라는 예술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인가? 그러한 예찬을 담았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성공에는 여러 희생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키쿠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식을 버리고 누군가를 이용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선택에 관해 시비를 가리며 판단해 주지 않는다. 희생을 치르게 한 키쿠오의 행보를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시선에 관객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짚어주듯 후반부에 등장한 아야노가 단 한 번도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말한다. 자식을 외면한 아버지로서의 키쿠오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가부키 배우로서의 키쿠오를 인정한다. 누군가의 희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무엇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인생사처럼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저마다 가진 상처와 그것의 회복을 담아내고 있다.
3.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키쿠오는 끝내 모든 것을 지나 오랜 시간 찾아온 풍경을 마주했다. 그 마지막 장면을 보며 느낀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결국, 키쿠오의 예술적 열망, 그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상함’이 느껴졌다.
아름다워서 황홀하지만,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관객으로서는 그가 국보가 되어 무대에 오른 결말을 온전히 응원할 수가 없다. 키쿠오가 받은 차별과 그로 인한 그의 선택,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부키 세계 속 모순과 부조리 등 키쿠오가 감내해야 했던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와 동화된 듯 그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가 좇던 목표도, 그것을 위한 무수한 노력도 모두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녹아 사라졌다. 오로지 고요한 풍경이 존재할 뿐이었다. 미묘한 감정의 틈새로 웅장한 음악이 비집고 들어왔다. 마침내 아름다운 극의 막이 내렸다.
그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가부키를 사랑하는 만큼 무언가를 사랑한 적 있을까? 그의 곁에 남은 것이 무엇일지 의아할 정도로 그는 가부키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듯했다. 예술에 대한 열망이 이토록 자기 파괴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간절함을 담고 있기에 그것이 끝내는 아름다워 보인다. 파괴적일지 모르는 열망은 그만큼 처절하기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키쿠오가 보여주는 예술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처절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우리는 그 간극에서 매력을 느끼고 감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이처럼 <국보>는 여러 관계와 꿈이 존재하는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50년이라는 세월을 담아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여주며 ‘삶’에 대해 말하는 영화, 엇갈린 사랑이나 가족, 친구 등 ‘관계’에 대해 말하는 영화, 가부키라는 예술과 국보를 목표로 삼으며 ‘꿈’에 대해 말하는 영화. 모두 <국보>를 설명하는 문장이 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소재일지언정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문장으로 형언할 수 없는 영화 <국보>의 매력이 많은 이에게 가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