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살 때부터 근 20년 동안 안경을 썼다. 당시엔 해리포터 시리즈가 한참 유행 중이었던지라, 나도 안경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가 안경을 맞추러 간 김에 나도 눈이 나빠진 것 같다고 선포를 했다.
깜짝 놀란 엄마가 시력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젠장, 정말 시력이 나빠져 있었다. 그 길로 나는 최근까지 안경을 써왔다. 그 이후 안경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작전은 계속되었고, 그것은 꽤나 꾸준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시도하였을 때는 슬슬 꾸미는 것에 관심이 생긴 중학생이 된 무렵 착용해 본 써클렌즈였다. 2010년 초 무렵엔 직경이 큰 렌즈를 껴서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이 흔한 트렌드 중 하나였다. 나도 그 트렌드에 몸담고자 써클렌즈를 구입하여 껴보았다. 끼고 난 후 내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세상에나! 낯설기 그지 없었다.
안경을 벗은 얼굴이란 조금 더 잘 보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렌즈를 낀 내 얼굴은 내가 알던 나의 얼굴과는 너무나 확연히 달랐다. 눈은 너무 건조했고, 더군다나 눈 색깔이 밝은 편이던 내가 써클렌즈를 끼니 외계인 눈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안경잡이 인생 탈출 1차 시도는 실패했다.
2차 시도는 미용 목적을 버리고 조금 더 기능에 집중하자고 하여 고등학교 때 구입한 하드 렌즈였다. 하드렌즈는 직경이 작기 때문에 소프트렌즈보다는 눈을 덜 건조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하드렌즈의 가장 큰 단점은 눈에 꼈을 때 확연히 느껴지는 이물감과 뻑뻑함이다. 눈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 자신감 있게 꼈지만, 낀 순간 고통스러워서 그 이후로 하드렌즈는 얼마 껴보지도 못하고 우리집 창고에 처박힌 신세가 되었다.
10대 때 겪었던 렌즈에 대한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던 탓인지, 20대가 되어서도 나는 렌즈를 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간혹 정말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만 그 전날 마음의 큰 결심을 하고 컨디션 조절을 하여, 그 다음날 3-4시간 동안 렌즈를 겨우 끼고 빨리 빼버리는 게 내가 렌즈에 가진 한도의 전부였다.
이렇게 '렌즈 착용의 어려움'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굳이 길게 길게 풀어 썼다지만,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렌즈를 끼는 게 사실상 꺼려졌던 이유는 렌즈를 끼고 난 후 내 얼굴을 직면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뻐지고 싶은 바람과 희망으로 렌즈를 끼고 나면, 고르지 않고 불그스름한 나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보였고 그로 인해 나의 희망과 바람은 렌즈를 낄 때마다 실망으로 빠르게 바뀌곤 했었다. 몇 번의 실망을 겪고 난 이후론, 원래 안경을 끼던 대로 살아가는 게 내 마음에는 좀 더 편한 일이 아닐까 하는, 일종의 체념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격동의 20대를 보내고 30대에 접어들자 청춘 그 자체였던 나의 피부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미국 출장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안경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렌즈를 끼는 것이 불편하다면 수술을 하면 될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번뜩였다.
그 이후로 유명하다는 병원 정보를 찾아서 눈 검사를 받았다. 주로 강남 한복판에 있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상담 뒤에 수술 일정을 바로 잡는 게 그들이 하는 의례적인 상담의 과정이었고,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면 불편한 내색을 보이는 병원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병원도 찾았지만, 난 결국 라식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내린 것에는 내가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 게 컸다. 즉, 나는 아홉 가지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해도 그것에 한 가지 부정적인 것이라도 있다 치면 꺼려 하는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의 숙원 사업은 막을 내렸던 것일까? 수술을 최종적으로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다시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드림렌즈였다. 드림렌즈는 밤에 교정용 하드렌즈를 끼고 자면, 다음날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시력이 일시적으로 교정되는 효과를 지닌다.
마지막 남은 희망 한 줄기를 붙잡은 채 병원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드림렌즈는 한 달 동안 시험 착용 기간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처음에 간호사가 교정할 렌즈를 착용하도록 도와주는데, 착용하자마자 중학생 때 겪었던 눈의 이물감이 오랜만에 느껴져 기시감이 느껴지기도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때만큼 이물감이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렌즈를 처음 꼈을 때 보이는 나의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좀 더 견뎌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의 기간이 지났고, 나는 드림렌즈를 매일 착용하여 안경을 벗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물론 컨디션에 따라 다름날 시력이 완벽하게 교정되지 않을 수도 있고, 밤이 되거나 어두운 곳에서는 빛번짐이 있기도 한 게 사실이다)
시간이 무섭다는 게, 과거의 고통과 두려움이 현재의 나에겐 더 이상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고 견뎌낼 만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안경을 벗은 나의 모습은 아직도 낯설 때가 종종 있지만, 그 낯섦 자체를 요즘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자신만의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만약 안경잡이 탈출 작전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더 중요한,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받아들일 마음의 근력이 다져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실망하고 안경을 끼면서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안경을 끼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에게 안경이 주는 의미가 '나를 대면하는 것으로부터의 도피처'였기에, 안경을 벗고 나를 직면하는 것이 나에겐 큰 의미가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에도 노력 끝에 그 변화를 기쁘게 수용할 수 있는 내 안의 힘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