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는 잘됐던 주법이 오늘은 조금 버겁습니다. 직전까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영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제자리걸음입니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스스로 의심하고 물음을 반복하게 합니다. 언제쯤이면 할 수 있지? 어떡하지? 실수로 잘못된 음을 낸다면, 박자를 잘못 맞춘다면.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게 만드는 것 역시 불확실성입니다. 이번에 안 됐다면 다음엔 될 것입니다. 다음에 안되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겁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수많은 합주와 연습 끝에 배운 것은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고 기대하는 법이었습니다. 오래전의 누군가 자신의 노래가 후세에 전해질지 알지 못하면서도 곡을 써낸 그 마음이, 저희가 끊임없이 국악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모든 가능성이 되어주신 부원분들도 함께 힘이 되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의미가 관객석에 계신, 각자의 일상을 꾸려나가는 여러분께 고아한 선율과 함께 전해지길 바랍니다. 기대와 긴장의 한 끗 차이에서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늘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에서의 실수, 망쳐버린 시험, 오늘도 실패한 미라클 모닝까지도 내일은 달라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무대에 선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만큼의 이상으로, 여러분의 내일을 응원하겠습니다.
유난히 긴 여름, 반드시 찾아올 수확의 계절을 생각하며, 달을 꿈꾸며. 모두가 일구어낸 하나뿐인 연주회입니다.
저희의 추상秋想에 한데 어울려 주세요.
지난 학기, 대학교 국악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아 작성한 연주회 팸플릿 인사말이다. 연주회 제목을 가을밤에 드는 생각을 뜻하는 '추상秋想'으로 지었지만 아직 햇볕이 뜨거운 8월 말에 열린 연주회였다. 아직 날이 추워지지도 않았는데,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처럼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는 어투로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내가 언제 절망했고, 언제 힘을 얻었는지. 예전에 쓴 글들을 전부 열어 보면서 부원은 물론 연주회에 찾아와 주시는 관객분들께 힘을 주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 나를 구성하는 한 가지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기대'를 택할 것이다. 불투명하지만 그래서 더 넓은 가능성에 나를 던지는 게 이리도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올해 스물한 살 때부터였다. 좋은 기회로 수십 명의 부원이 속한 중앙 동아리의 회장을 맡은 것, 영화제 자원봉사를 위해 일주일 간 홀로 집을 떠난 것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도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갑자기 춤에 관심이 생겨 학원에 등록하여 매주 춤을 춘 지도 3개월에 접어들었다. 실력이 느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무를 외우고 영상을 찍는 것이 이전보다는 덜 낯설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 물 공포증 극복을 위해 다니기 시작한 수영 기초 강습반에서 내가 4회 만에 킥판 없이 자유형을 시작할 줄 누가 알았을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도 에디터 지원 마감 이틀 전에 공고를 확인하여 부랴부랴 작성한 뒤 마음 졸이며 합격 발표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만약 에디터 지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여 미리 포기했다면 지금 내게 이런 기회란 없었을 것이다. 물이 무섭다고 평생 물에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물 속이 이리도 고요하고 매력적인 곳인 줄 몰랐을 것이다. 수영 후 먹는 밥이 이리도 맛있다는 걸 이제 안 것이 뒤늦은 후회 중 하나일 정도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색하다고 춤을 추지 않았다면 리듬을 타는 그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실패도 있다. 물만 먹고 끝난 수영 시간, 몸이 안 풀려 어정쩡하게 찍힌 영상처럼 아쉽고 때로는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원망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대하기를 선택한다. 모든 게 쌓여 결국 내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아낌 없이 기대하고, 아낌 없이 쏟아 붓고 싶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의 가운데 쓴 글이 벌써 3개월도 전이다. 이제는 영하의 아침, 목도리를 두르고 스웨터와 코트를 껴입고 오늘도 밖으로 나선다. 새로운 씨앗을 심을 계절을 기다리며 차가운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다. 얼얼할 정도로 짜릿하게 나를 반기는 수확의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