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소극장 연극을 보다가, 내 옆자리의 관객도 그 공연의 배우여서 무대로 갑자기 뛰어들어 연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받은 충격이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무대에서 다른 삶이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원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직접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나도 처음이라 놀랐다. 내 삶의 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배경을 가진 인물이 되는 기분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위수정 작가의 『fin』 은 이러한 내 물음에 답해주듯 네 인물의 연기와도 같은 삶을 조명한다.

 

fin_표1.jpg

 

연기와도 같은 삶을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옥이다. 미옥은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매장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시 <밤으로의 긴 여로> 연극 무대에 오르며 복귀를 시도한다. 그는 우울증과 불면증 등 각종 신경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방문한 술자리에서 동료 배우 태인과 불화가 생길 뻔했으나 배우의 연륜으로 얻은 포커페이스로 이를 무마한다. 다음 날, 미옥은 태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그런 미옥을 곁에서 지켜보는 매니저 윤주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미옥의 푸념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미옥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알면서 묵묵히 일을 해 나간다. 그런 그는 미옥에게 기대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언젠가 미옥과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들뜨는 가슴을 내리눌러 버린다. 미옥의 물건에 손을 대고, 비싼 마사지를 받는 등 점차 미옥에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윤주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상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태인의 매니저인 상호는 태인보다 먼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가 원했던 배우로서의 삶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상호는 배우 태인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이를 쉽게 탐내지는 않는 방어적인 인물이다. 태인이 자신은 본심으로 연기했다고 말하자 속으로 묻는다. 본질과 본심은 다른지. 인간 태인이 가진 본질과 연기할 때의 본심을 당신은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어떻게 연기할 수 있는 거냐고 물으며 배우로서의 삶이 도대체 뭐길래 그리도 집착하는 거냐고 알고 싶지 않았을까.

 

태인은 기다림 끝에 성공한 배우가 됐지만 거친 술버릇과 안 좋은 소문으로 동료 배우들이 피한다. 가족들과의 불화도 겹치며 태인은 연극에 더 매진하게 되는데, 미옥과 함께 한 <밤으로의 긴 여로> 뒤풀이가 끝난 후 상호의 차로 별장에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중독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중독은 특정 행동이 건강이나 사회생활에 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집착적 강박이다. 이 갈망 상태가 심해지면 내성과 금단증상이 일어난다.

 

 
우리는 글렀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막이 내리고, 밤이 오고, 악몽을 꾸며, 사람을 만나고, 박수 치고, 안부를 묻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병들고, 앓다가, 그렇게 쇠락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거겠지. - 20쪽
 

 

술만 마시면 성격이 과격해지는 태인은 술에 취해 뒤풀이 날 밤에 상호에게 부축받고 차에 탄다. 미옥은 마약 중독이라는 오명을 쓰고 업계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한다. 윤주는 미옥의 물건에 손을 대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상호는 점차 깊어지는 태인에 대한 경멸과 동경에 괴로워한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관망하면 모두가 각자의 사유로 각자의 결핍에 중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수정 작가는 중독이 삶을 끝, 그 절정으로 몰고 가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이 소설처럼 어떤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중독과 몰입을 테마로 가지고 있다고 보고 싶다. 각자의 삶에 몰입하면서도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질투하는 인간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태인의 삶은 끝났지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를 통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몰입이라는 질주를 독자들이 맛볼 수 있게 하려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운명도 뭣도 아니다. 행운도 불행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누구를 탓할 수 없다. 그게 무엇이든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홀로 남았다.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타오르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비명이자 환호. - 143쪽
 

 

 

tag.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