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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중 ‘고맙다 올리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것들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누군가에게 “요즘 싫어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좋아하는 건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정작 싫어하는 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했다. 호불호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일상에서 크고 작은 ‘싫음’을 느끼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하려니 잡히지 않는 것이다.

 

‘나는 뭘 싫어할까.’ 그때부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고민을 거듭하니, 내게서 싫다는 마음보다 더 가까운 건 ‘질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는 싫음과는 다르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질투를 품고, 결국 그 질투 때문에 나 자신을 미워하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부터 14년을 이어온 친구 A였다.


A와 나는 오래된 친구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대략 14년을 함께 했다. 나는 글을 썼고 A는 그림을 그렸다. A는 그림을 정말 잘 그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재능을 정의할 줄도 몰랐지만, 그 때에도 A의 그림에는 늘 설명하지 못할 뭔가가 있었다.

 

“내 친구 정말 대단해!”

 

이 말을 진작 속시원히 전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당시의 나는 치졸하게도 질투심을 품었다. 나는 글을 특별히 잘 쓰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데, A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네. 뭐가 되어도 잘 될 것 같아. 그럼 나는 어떡하지? 난 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옥죄었다. 못난 생각이었다.

 

그 때 나는 친구와 거리두기를 택했다. 고등학교 지망을 다른 곳으로 썼다. 결국 우리는 갈라졌고 나는 다른 친구들과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이후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만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친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먼 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같은 태양계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

 

그 못난 질투심을 내려 놓은 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였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몰두했을 오랜 입시를 끝마치고, 학교 이름이 나를 대변해주기라도 하는 듯 느꼈던 학교 생활을 지나,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나서야 그 길고 긴 감정을 끊어내고 비로소 ‘내 친구 정말 대단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용기가 생겼다.

 

조금 더 빨리 이 마음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 할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떠올려보면, 가장 선명한 추억은 여전히 중학생 때 멈춰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이상했다.

 

돌이켜보면 A는 늘 내 글을 칭찬했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 칭찬 마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나는 타인의 장점을 바라보는 만큼 나를 싫어했다.

  

이번 주, A가 본가를 떠나 우리 집에 와서 2주 가량을 지내게 되었다. 중학생 때 이후 가장 길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맛있는 걸 먹고 무슨 드라마를 정주행하자는 즐거운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끊어지지 않은 관계가 고맙게 느껴지곤 한다. 이번 만큼은 “내 친구 정말 대단해” 라는 말을 가감없이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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