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사령관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남긴 말이다. 그가 ‘고요의 바다’ 위에 남긴 발자국은 역사에 영원히 남은 위대한 흔적이 됐다. 달 착륙선 조종사인 버즈 올드린은 닐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을 밟았다. 그는 교회에서 준 빵과 와인을 들고 성경 구절을 읊으며, 인류 최초로 달에서 성찬식을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기억하지만, 아폴로 11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단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아폴로 11호 사령선 조종사인 ‘마이클 콜린스’다. 그는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하는 동안 홀로 사령선을 타고 달의 궤도를 돌며 두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달의 뒤편에 다다르자, 지구는 물론 닐 암스트롱·버즈 올드린과도 통신이 끊겼다. 우주에 홀로 남은 마이클 콜린스는 영원에 가까운 48분간의 고독을 견뎌야 했다.
마이클 콜린스는 처음엔 달에 착륙할 수 없는 사령선 조종 임무를 맡게 돼 실망했지만, 동료들을 데리고 무사히 귀환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니 아쉬움을 털어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사람들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발자취를 남기는 동안, 홀로 달의 어두운 뒤편에 있던 그를 ‘아담 이래 가장 고독한 남자’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마이클 콜린스는 그때 자신은 기분이 좋았으며, 맛있는 커피도 한 잔 마셨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창작 초연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마이클 콜린스의 삶을 다룬 1인극이다. 극은 임종을 앞둔 마이클 콜린스가 삶을 돌아보는 형태로 전개된다(인생 주요 장면들이 뇌리를 스치는 주마등일 수도 있겠다). 아내 패트리샤와 가정을 이루고, 우주 비행사란 꿈을 위해 동료들과 훈련하고, 그러다 한 동료를 가슴에 묻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달 탐사 임무를 완수하고, 달에 갈 두 번째 기회를 거절하며 지구에 남는 것까지. 그의 삶, 아폴로 1호 화재 사고, 아폴로 11호 프로젝트 진행 과정과 후일담까지 대부분이 실화이며 캐릭터들 또한 실존 인물이다.
<비하인드 더 문>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도 실존 인물처럼 성실하고 묵묵하며, 꿈과 가족을 사랑하는 선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극에선 달·우주를 꿈과 이상, 지구를 현실로 설정해 그의 변화하는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초고 집필 단계에서 5인극이었던 극은 마이클 콜린스를 전면에 내세운 1인극으로 재탄생했다. 노랫말과 대본을 쓴 김한솔 작가는 작품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 1인극으로 방향성을 바꿨다고 말했다. 마이클 콜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극은 지구, 즉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이자 현실을 가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그리며 관객에게도 위로를 건넸다.
<비하인드 더 문> 배우는 마이클 콜린스 외에도 닐 암스트롱·버즈 올드린·에드 화이트를 연기한다. 에드 화이트는 극에선 마이클 콜린스·닐 암스트롱과 함께 훈련을 받은 동료로 등장한다. 에드 화이트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은 아폴로 1호 조종사 ‘에드워드 화이트’다. 아폴로 1호 발사 전 테스트 중, 사령선 내부에 화재가 발생해 우주 비행사 세 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에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던 나사(NASA)는 안전 절차를 강화하며 시스템을 개선했다.
<비하인드 더 문>에선 마이클 콜린스와 에드 화이트의 우정 또한 비중 있게 다루며 객석을 울린다. 수다스럽고, 말만큼 겁도 많았던 에드 화이트의 허망한 죽음은 마이클 콜린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불에 탄 우주복을 입은 에드 화이트의 영혼은 제 죽음을 ‘근사한 실수’라 하며 웃는다. 이 일로 네가 안전해질 수 있다면 괜찮다는 에드 화이트. 우주는 실수를 용서하지 않지만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아이들(미래 세대)을 위해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에드 화이트의 초탈한 모습에선 신이 떠오를 정도다.
아폴로 계획은 냉전 체제, 미국과 소련의 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급하게 진행한 프로젝트인 건 분명했다. 아폴로 1호 사고는 1960년대 안에 달 유인 탐사를 해내야 한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따르기 위해, 여러 테스트를 무리하며 강행하던 중 생긴 비극이었다. 극은 아폴로 계획의 어두운 면을 다루진 않고, 에드 화이트의 죽음 또한 마이클 콜린스가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비하인드 더 문>은 달에 간 마이클 콜린스가 고독에 빠지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라이브캠 연출로 보여준다. 최근 여러 무대극에서 적극 활용하는 라이브캠은 객석에선 보기 힘든 각도의 장면, 혹은 배우의 연기를 자세하게 보여주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비하인드 더 문>은 온전한 1인극은 아니다. 마이클 콜린스의 아내 ‘패트리샤’ 역으로 네 명의 배우가 출연하며, 단독 넘버(‘그대는 그저 달이 예쁘단 말만’) 또한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트리샤 역 배우는 무대에 직접 오르진 않는다. 영상으로만 등장하는 패트리샤는, 극의 클라이막스 시점에 모습을 드러내며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준다.
<비하인드 더 문>은 그 외에도 영상을 다방면으로 활용했다. 마이클 콜린스와 동료들의 훈련, 우주에서 먹는 음식을 묘사하는 넘버에도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시각적인 재미를 추구했다.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전개로 배우가 감정을 실을 수 있도록 쓰인 넘버들, 달 표면 같은 입체적인 무대, 우주·별·달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조명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모여 탄생한 달의 뒤편은 유준상·정문성·고훈정·고상호 네 배우들이 치열하게 탐사 중이다.
2025년 11월 19일 오후 8시 공연에서 마이클 콜린스를 연기한 배우이자 스토리텔러는 정문성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 <헤드윅>,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 <셰익스피어 인 러브>, <빨래> 등 굵직한 대표작들을 만들며 여러 무대를 오가는 정문성의 연기력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락스타이자 상처받은 인간의 양면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무대를 압도한 <헤드윅>, 폭발적인 1인 다역으로 객석에 웃음 폭탄을 던진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에서 쌓은 내공을 첫 1인극인 <비하인드 더 문>에서 마음껏 드러냈다.
<비하인드 더 문>에서 네 명(마이클 콜린스·닐 암스트롱·버즈 올드린·에드 화이트)을 연기한 정문성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발성과 대사 톤으로 여러 인물을 개성 있게 묘사하며 탄탄한 서사를 구축했다. 그들은 평범하고, 선하며, 겁 많고 이기적일지라도 꿈이 있었다. 그 꿈은 달, 그리고 우주였다. 정문성은 마이클 콜린스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며 관객을 달의 뒤편으로 데려갔다. 달의 궤도를 성실하게 지킨 마이클 콜린스처럼, 정문성 또한 훌륭한 연기라는 배우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달에서 느꼈던 반짝임을 지구에서도 느낄 수 있어.”
마이클 콜린스는 당시 미지의 세계에 가까웠던 달과 우주를 꿈꿨다. 그는 결국 꿈을 실행한 용감한 인간이었다. 달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다음 기회가 빠르게 찾아오지만, 그는 가족과 지구를 택하는 더 큰 용기를 보인다.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엔 달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박한 일상과 현실은 영원히 붙잡고 싶은 반짝이는 꿈이 된다. 모두가 동경한 달 탐사란 꿈을 이룬 마이클 콜린스가 훗날 지구를 택한 건, 이와 같은 삶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삶이란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는 것 또한 인류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것이 ‘Behind the life’, 인생 뒤편에 숨어 있어 바로 발견하긴 어려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