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님 옆 낯선 서양의 문
광화문,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가장 많은 발걸음이 있는 곳이다. 그 중심에는 세종대왕님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며, 광화문에 놀러 온 여러 사람을 바라보고 계시다.
그러던 어느 날 11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 한 문이 나타난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들어서 바로 왼쪽으로 꺾으면 레드카펫과 함께 후기 르네상스 스페인의 플라테레스크 양식을 차용한 정문이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여 있었다.
짙은 빨간색의 왠지 모를 고급스러움이 나의 차림새가 신경 쓰이게 되는 서양 미술사가 주는 우아함이 묻어났다.
전시의 순서는 "르네상스 – 바로크 – 로코코에서 계몽주의 –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 후기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진행된다.
학교 미술 시간에서 얼핏 들었던 이름들이 지나가지만 정확하게 그 시대를 알진 못한다. 하지만 이 전시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준다. 섹션마다 보이는 벽지의 색깔들과 흘러나오는 음악 등 이 공간을 둘러쌓은 모든 것이 그 시대로 나를 전송해 준다.
우아한 보라색과 대리석
첫 번째 섹션인 ‘르네상스’는 짙은 보라색 벽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검은색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어두웠던 보라색 벽지는 오직 작품만이 눈에 띌 정도로 느껴지게 했다. 동시에, 흔히 미술관에 있는 펜스 대신 벽과 관람자 사이의 대리석은 관람객에게 우아하게 거리를 유지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패널에 유채, 1520년경, 64.77 cm x 82.55 cm, 샌디에이고 미술관
이번 섹션은 어느 곳보다도 작품 속 인물과의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전시 해설에서도 나와 있듯이 해당 시대는 인물과 대상을 훨씬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위의 작품에서 마리의 독특한 손짓은 마치 내가 앉아서 네가 갖고 있는 많은 허영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시 오기 전 샀던 립스틱을 나도 모르게 만지게 되었다.
높은 층고와 경외감
다음 섹션인 ‘바로크’ 전시관은 아치형 문으로 시작되어, 높은 층고와 아치형 배경에 둘러싼 미술품들을 볼 수 있었다. 레드카펫과 비슷한 느낌의 벽지들은 나의 발소리마저 숨죽이게 했고, 전시를 울리는 “Le Tombeau De Couperin”이 웅장함을 더했다.
종교적인 작품이 늘어났던 것이 느껴질 만큼 이 공간에서 느낀 것은 종교로 인해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이었다.
엘 그레코(도미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참회하는 성 베드로>, 캔버스에 유채, 샌디에이고 미술관
들어오자마자 걸려있던 3개의 작품은 마치 신을 찾는 듯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데, 이러한 감정은 신 외의 어떠한 대상에서도 나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위의 그림은 그리스도를 부인한 후 참회하는 모습인데, 마치 털이 바짝 선 듯 표현된 그의 근육이 유독 내 시선을 이끌었다. 과연 근육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자신의 신앙심에 대한 회개에 마음 아파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앙심을 배반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들켜 무서운 것일까?
하지만 이 대화는 신앙심을 갖고 있는 신자들이, 나아가 성 베드로와 예수님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대화의 발전을 내 안에서 이끌어 낼 수는 없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이어지는 로코코에서 후기 인상주의 또한 초록색, 파란색, 분홍색의 벽지를 통해 동화에 있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그리고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은 드라마 음악 제작소 <야생마 사단>대표이자 <정애경 팝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정애경 음악감독이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Epilogue : 어떻게 느꼈나요?
그렇게 전시를 마무리할 즈음에 Epilogue가 배웅한다. 마치 내 속마음을 읽은 듯 이 전시로 서양 미술을 배우기보다 이해하고 느끼고 가길 바란다는 미술평론가 박우찬 님의 말로 막을 내린다.
번외로, 노루페인트가 이 대형전에 협찬했다고 한다. 노루페인트는 “예술의 색을 통해 감정을 전하고, 페인트는 그 감정을 담는 도구”로써 전시를 보다 일상속에서 경험하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만들어간 사람들과 나 또한 같은 생각으로 이 전시를 주변에게 소개하고 싶다. 어려운 역사책을 공부해야만 할 것 같은 서양미술사가 다가가기 어렵다면 가볍게 세종문화회관에 들러, 전시회의 모든 공간을 느끼고만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