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600년을 압축하다

*참고*
1. 이층에 걸쳐 진행되는 전시
-1층: 1.르네상스+2.바로크
-지하 1층: 3.로코코+4.인상주의+5.모더니즘
2. 카메가 표시된 작품만 사진 촬영 가능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까지 서양 미술사 600년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현재 세종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문화콘텐츠 전문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올해로 개관 100주년을 맞은 샌디에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세종미술관에서 개최한 대형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샌디에이고 미술관(San Diego Museum of Art, SDMA)
SDMA는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로서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잇는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장한 컬렉션이 무려 7,000여 점이 넘을 만큼 서양 미술사 작품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희소성 면에서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데 르네상스에서부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어느 특정한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600년이라는 서양 미술의 변천 과정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총 65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25점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됐다고.
저마다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또 그것이 다음 시기의 작품에 반영되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 있다. 함께 흐름을 타며 그 미묘한 차이를 포착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서양 미술의 변천을 5부의 흐름으로 살펴보다
1. 유럽 남부·북부의 르네상스→2. 바로크→3. 로코코~신고전주의
→4. 사실주의~인상주의→5. 20세기 모더니즘
1부: 르네상스
서양 미술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르네상스 시대. 이 시기의 미술 경향은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정적이며 이상주의적인 표현을 동시에 추구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 기법이 그의 제자인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에게 영향을 주었고 특히 인체의 이상적인 비례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2부: 바로크
정치와 종교의 격변을 겪던 17세기 바로크 시대. 종교적 분위기가 짙게 묻어난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보다는 좀 더 동적이면서 현실적인 느낌이 난다.
3부: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까지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로코코 시대. 시간이 지날수록 초상화는 점점 더 계몽주의적(교회 권위에 뿌리를 둔 구시대적 제도에 반대하는 혁신적 사상)인 분위기를 띠게 된다. 그러다 고전적인 예술미를 되찾으려는 신고전주의 성향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널리 확산되었다.
4부: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19세기 산업 혁명이라는 격동을 겪은 사회는 예술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 현실적인 일상과 사람의 모습을 담으려는 사실주의 미술이 등장했고, 이런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한 인상주의 작품 또한 점점 늘어 갔다. 전통적인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 순간의 인상에 집중하여 더욱 과감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인상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5부: 20세기의 모더니즘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최초의 모더니즘은 추상표현주의에 있어서 정점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묘주의나 야수파, 상징주의와 같이 표현에 있어서 여러 경향이 공존하던 때이다. 전통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확장되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혁신과 실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다 뚜렷해진다.
발길을 잡아끈 모더니즘 구간
후기 인상주의에서부터 모더니즘까지를 다룬 마지막 5부에서는 다양한 흐름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화풍의 공존으로 의아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느꼈던 구간이었는데 결이 다른 작품이 한 공간에 혼재된 느낌이라 어딘가 묘했다. 기법적인 변화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점묘법으로 진행된 작품, 강렬하면서도 단순하게 순수한 색채를 사용한 작품, 여성 초상화를 다양하게 해석한 작품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른 구간에서보다 유독 독립적인 성향이 잘 느껴지기도 했다. 기존의 화풍과, 오래 묵은 관습을 깨려는 과감한 시도들이 작품 곳곳에서 보였다. 균형미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여기고 극적인 표현을 추구했던 과거의 미술 경향이 점차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거듭나며 발전하는 듯했다. 그것은 다양한 예술적 실험처럼 보였다.
그 예술적인 실험이 한층 더 과감해진 이유는 시대의 급변과 함께 유럽에서 파리로 예술의 중심지가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작가들도 이 시기에는 더 관찰하고 비판하는 모드로 자신의 삶과 작품을 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험성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술 장르가 창조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그려 보기도 했다. 아마 시작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워 보이는 대중성이었을 거다. 그러다 기존의 의미를 뒤엎는 시도가 한쪽에서 이루어졌을 테고 뒤에 가서는 대중성과 실험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 등장했을 것이다. 받아들이고 튕겨져 나가고 합쳐지고 다시 태어나며 오늘의 현대 미술에 당도한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모르는 지난 시간들이 한층 더 깊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
단순한 명화 전시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십 년도 더 된 일이 튀어나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묘한 경험을 했다. 감회가 새롭다. 나도 예전에 아이들과 명화 전시회를 열었던 적 있다. 명화패러디 전시였다. 늘 수업만 하다가 여러모로 환기가 필요해서 하게 되었던 우리의 작은 프로젝트였다. 아주 옛날 일이지만 나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실 그 일은 샛길로 빠져서 얻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샛길로 자주 빠지는 사람이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그때의 일을 이번 세종미술관 전시로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과거는 켜켜이 쌓여 다음 시간으로 흘렀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것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현재를 사는 게 맞지만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지금의 형태는 치열한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패턴에서 반대로 가려는 다음 패턴이 생겨나고, 좀 더 높은 통합 차원의 패턴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삶에서나 미술에서나 다를 게 없다.
서양 미술사에 획을 그었던 거장들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았단다. 안심인지 위로인지 모를 헷갈림 덕분에 오늘을 열심히 살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