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트랩_어텀페스타_700x1000 (1).jpg

 

 

연극 《트랩》은 재판 놀이판이자, 한 남자의 고백을 위한 만찬장이다.

   

서울시극단의 연극 《트랩(Trap)》은 스위스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소설 《사고》를 원작으로, 성공만을 좇던 주인공 트랍스가 우연히 만난 퇴직 법조인들의 모의재판에서 숨겨왔던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놀이로 시작된 이 재판이 결국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해부하는, 고통스럽지만 역설적으로 환희로운 자기 고백의 장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이다. 트랍스는 처음에는 유쾌하게 피고 역할을 받아들이지만, 노련하고 여유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퇴직 판사, 검사, 변호사로 이루어진 배우진들의 호흡은 이 블랙 코미디를 순식간에 날카로운 심리극으로 전환시킨다.

 

관객에게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에서 비롯되지만, 그 코미디의 이면에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날카로운 질문의 파도가 숨겨져 있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트랍스의 사생활과 과거의 사고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재판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무대 위에서 실제 고급 와인과 만찬이 오가는 연출은, 독일어 'Gericht'이 법정과 향연을 동시에 뜻하는 것처럼, 이 심판의 자리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트랍스는 이들의 논리적인 추궁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진심과 마주하게 된다. 성공적인 삶의 이면에 깔렸던 작은 비도덕적인 선택들, 경쟁자를 향한 은밀한 질투,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부당한 이득까지. 그는 타인에게 감춰왔던 추악한 사실과 내면의 진심을 자기 고백과 회상으로 스스로 들추게 만듦으로써, 놀이였던 재판은 한 순간에 엄중한 심판의 법정으로 변한다.

 

연극 《트랩》이 기존의 심리극과 구별되는 지점은, 트랍스가 자신의 죄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고통 대신 기묘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게 진실을 토해내라는 부추기는 듯한 공감과 환호성에 도리어 기뻐하며, 내면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가장 중대한 혐의, 즉 과거의 비도덕적 행위로 인해 얻은 성공에 대한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사형'을 진행한다. 여기서의 사형은 육체적인 형벌이 아니라, 기존의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했던 '나'를 완전히 파괴하는 심리적 사형을 의미한다. 불편한 진실을 도리어 기쁘게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려는 행위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폭발적인 감정 변화는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며, 이 극이 단순한 희극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상식에 맞게,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그 상식 자체가 도덕적 트랩(함정)이었음을 깨달은 트랍스. 무엇이 그렇게 새로운 알을 깨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 더욱 크기에, 그것으로써 남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게 된 것일까?

 

《트랩》은 관객들에게 묻는다. 너의 삶은 과연 도덕적인가? 성공과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너는 어떤 '죄'를 묵인하고 있는가?

 

배우진들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완벽한 호흡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연극에 몰입하는 동안, 관객은 어느새 무대 위의 배심원을 넘어 자신의 삶에 대한 피고인이 되어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서게 될 거다. 이 극이 제시하는 '새로운 나로 남을래'라는 선택지는, 극장을 나서는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숙제로 남는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