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의미들'의 조금 다른 맥락


 

의미들_앞표지_띠지.jpg

 

 

나는 모든 순간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세상에 무의미한 일은 없다. 일을 하면서도 많이 느낀다. 문장 하나를 쓸 때에도, 보고를 할 때에도 이유가 필요하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의미가 없다면 주저리주저리 결론 없는 생각을 늘어놓게 된다. 요즘 일에 대한 나의 고민들 중 하나이며 어쩌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 책에서 잦게 나오는 '의미'들은 좀 다른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작가 수잰 스캔런이 정신병동에서 삼 년 동안 장기 입원하던 시절에 쓴 회고록이다. 이 책은 엄마가 죽고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 다시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글이다. 필자는 회고록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전부 헤아리거나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순 없지만, 작가의 진심이 묻어난 문단을 해체하고 문장을 분석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들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은 그런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 있으니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잠에서 깨면 그게 거기 있었다. 그 명령들이, 이걸 하고 이걸 하고 그다음엔 이것과 이것을 하고

멈추지 마 넌 엉망이고 넌 실패할 거고 넌 못생겼고 배워야할 게 너무 많고 너무 뒤처져 있고 

넌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고 언제나 혼자일 거고 네 외로움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고 

넌 결코 네 영웅들이 쓴 것처럼 쓸 수 없을 거야.

 

- 30p

 

 

우울과 상실, 자기 혐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신이다. 내가 매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엉망'과 '실패'와 '못'과 뒤처'짐. 잠을 깨면 늘 거기에 있었다는 것들. 담담하게 쓰려 했지만 다 드러나는 작가의 위태로운 생각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불안할 수 있고 흔들릴 수 있고 좌절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홀로 위태로운 나날들을 견뎠을 작가의 마음을 가장 빠르고 적날하게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이었다.

 

 

이 책 역시 그 혼돈을, 그 형태 없는 슬픔을

다른 뭔가로 만드는 한 방식이다. - 54p

 

한 권의 책이 나를 구원했다니! 내가 말하려는 건 그런 얘기가 아니다.

(...) 책 읽기는 내 삶을 적극적으로 다시 쓰는 한 방법이 되었다. - 91p

 

 

작가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정신병으로 규정되어 치료를 받는 것만이 답이 아니고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는 읽었고, 그러면서 항상 가르침을 찾고 있었다(485p)'면서 의사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었다고 하기도 한다.

 

 

소녀는 이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자신을 사랑한다. 연인은 소녀다.

 

- 95p

 

 

마르그리뜨 뒤라스 소설 <연인>을 언급하며 작가는 위와 같이 해석한다. 연인은 가변적인 대상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됨을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독자와 책 사이 그 수용의 순간은 하나의 화학적 반응이며, 난 늘 그것이 마법이라고 생각해왔다(96p)'고 말하였다. 자아와 텍스트 사이의 흐릿해진 경계는 계획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내가 만들기도 하고 다시 원래로 되돌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이 말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훗날 다시 읽었을 때를 위해 적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정신분석은 이런 거였다. 

감정이 배제된 텅 빈 서판.

나는 뭔가를, 관심이나 인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에, 다른 주의 다른 시설에서 내가 찾게 될 뭔가를. 여기서는 아니었다. 

내가 가기 전에 그가 처방전에 뭔가를 썼다. 치료 계획이다. 

(...)

나에게 필요한 건 정신 역동 치료라고 그들은 말했다.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 109p

 

 

작가는 치료를 받아야하는 사람이다. 의사는 그렇게 말한다. 위 내용에서 '작가는 치료받는다'는 뜻만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속마음을 엿들을 수 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이라 필자가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봐도 될지, 훔쳐보는 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감정이 배제된 텅 빈 서판'이라는 말처럼 과연 정신질환 치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그 지료가 지속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다른 누군가에 관한 글을 써보지 그래요, 하고 한 학생이 제안했다.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보세요. 

 

또 다른 여자가 말했다. 만약 그게 낭비가 아니었다면요. 그게 살아 있는 한 방식이었다면요.

(...) 당신은 여전히 당신일 거고, 당신 몸속에, 당신의 인생에 갇혀 있을 거에요.

그게 다 소재고, 언제나 거기에 내용이 있어요. 

 

- 120p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쓰는 것이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평상시에 (일상적으로) 나의 존재를 알리는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수년간 이 얇은 선 위에서 병원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면서 살았다.

(..) 나는 항상 이런 식일까? 그 선 위에서 균형을 잡아 바른 쪽에,

제정신을 유지하는 쪽에 머물지 못한다면, 

혹은 더는 머물지 못하게 된다면 어떡하지? 그때는 어떻게 하나?

 

- 478p

 

 

작가는 극복해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불안한 마음.

 

과다 복용, 과잉 치료, 과속 주행 등 과하면 독이지만,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쓰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하니까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발로 뛰는 것이다. 다시 정신병원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 또 다시 같은 일을 저지르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싶다면 고통스러울지라도 읽고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양유정.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