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장례식장에서 틀 음악을 골라 보자.

 

음, 글쎄, 나는….. Bye Summer라는 노래를 틀어야지.

 

나의 인생은 한 계절 같아서, 이 계절을 통틀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해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만났던 우리를 잘 닫는 것이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이 세상을 휙 떠나버리면서.

 

나는 그 순간 슬프지 않을 것만 같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도 일단 날아가보는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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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의 <어떤 새의 이름을 아는 슬픈 너>. 대전의 독립서점 ‘다다르다’에서 구매했다. 당시 다다르다에는 문장 운세 뽑기 - 당신에게 닿을 한 조각이라는 이벤트가 있었고, 당시 내가 뽑은 문장은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장을 뽑은 것은 나지만 오히려 문장이 나를 선택해서 내게 다다른 것 같았기 때문에 고민도 없이 이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죽음 - 혹은 삶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경섭과 효진은 포르투갈 여행을 하던 중 독일 함부르크로부터 경섭의 이모인 길자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주 오래 전에 제주를 떠났던 사람이자 타향에서 이미 죽어버린 사람. 경섭은 20년간 연락도 없어 타인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는 이모의 집을 흝으며 그녀가 살았던 순간순간을 떠올린다. 길자가 열어 주었던 생일 파티나, 길자의 빼곡한 세간살이, 길자의 성격과 습관 같은 것들. ‘가족 없이, 타향에서 독신으로 살다가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요약해 버리기에는 남아 있는 흔적들이 있다. 거기에, 분명히 삶이 있었다.

 

이야기는 화장터의 스위치를 누르며 끝난다. 익숙한 오열이나 통곡도 없이, 경섭이 길자를 믿으며, 다 볼 수 있는 이모를 믿으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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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새가 한 마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째서 제목이 ‘어떤 새의 이름을 아는 슬픈 너’일까. 여기서 ‘너’는 왜 슬퍼할까.

 

작가님의 의도대로, 책의 제목은 그 내용과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새는 길자를 뜻할 것이라고 추론해 본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 옅은 삶의 조각들을 알고 있는, 그래서 부재를 슬퍼하는 ‘너’는 경섭을 뜻하지 않을까. 경섭이든, 효진이든, 이 책을 읽는 우리든, 길자라는 사람의 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이라는 말로밖에 수식하지 못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늘 그러하다. 서로를 백 퍼센트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관계는 없기에 늘 불완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관계들, 제대로 아는 것뿐이라곤 이름밖에 없는 관계들 속에서 생동한다. 그러니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슬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슬퍼하는 것은 ‘너’이지 ‘새’가 아니다.

 

길자의 죽음만을 근거로 그녀의 삶을 외롭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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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것.

 

부재를 통감하는 사람은 슬플지언정, 죽음 자체만으로는 슬프지 않다.

 

죽음도 결국 삶의 마지막 부분이므로, 죽음을 슬프다고 하면 삶 또한 슬픈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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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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