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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나는 한 단편영화제 스태프로 참여하며 영화제 기간 동안 현장을 함께했다. 근무 시간이 아닐 때는 자유롭게 상영작을 관람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많은 단편 상영작들을 볼 수 있었다. 단편영화가 지닌 매력은 짧은 시간 안에 밀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렬한 여운을 남긴 작품은 이번 영화제의 대상 수상작, 이세형 감독의 〈스포일리아〉였다. 오늘은 그 잔상을 따라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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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poillia ㆍ 2025 년 (29min)

 

감독: 이세형

출연: 장요훈, 정이주, 심효민, 원호섭

줄거리: 해답을 찾기 위해 500년간 우주를 떠돌던 김과 박은 이상한 행성 스포일리아에 불시착한다. 실사 인물과 클레이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화로, 감독의 자취방에서 2년 3개월간 제작된 우주적 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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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리아〉의 이야기는 우주 기원의 해답을 찾기 위해 500년간 우주를 떠돌던 두 탐사자 ‘김’과 ‘박’이 불시착한 행성 ‘스포일리아’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뇌(Brain)’로 이루어진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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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곳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지적생명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지적생명체는 김과 박이 이곳에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뇌별은 신경다발을 건드리면 그때야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지게 된다. 김이 건드린 신경다발로 인해 되살아난 뇌별의 입은 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김과 박에게 우주의 비밀을 말하려 한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박이 뇌별의 입을 박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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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번 자극된 신경다발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여 마침내 우주의 진리를 발화하려는 거대한 입의 형상으로 변한다. 김과 박은 그 압도적 존재와 맞서 싸우지만 결국 김은 강제로 우주의 비밀을 들어버린 후 스스로 손목을 그어 생을 마감한다. 이후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 입은 온 우주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우주의 진리를 발설하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골든 레코드'가 입을 막아 모든 것을 봉인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면,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처음부터 “답을 찾는 인간의 욕망”을 정조로 깔아놓는다. 우주의 기원을 해명하려는 탐사자 '김'과 '박'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속 인물들처럼, 어떤 궁극적 진리를 기다리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 뇌로 된 행성은 마침내 입을 얻어 우주의 비밀을 말하려 하지만 김과 박은 그 입을 부숴버린다. 그 행위는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앎의 종말을 거부하기 위한 저항처럼 보인다. 만약 입이 진리를 말해버린다면 두 탐사자의 존재 이유 즉, 진리를 탐구하고 질문하며 살아가는 행위는 사라진다. 따라서 입을 부순다는 것은 진리가 완성되는 순간 자신들이 소멸할 것을 예감한 본능적 자기보존이다. 그들은 우주의 비밀을 알고자 떠났지만, 막상 그 비밀을 알아버리는 순간 그들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가 함께 사라져버린다는 역설을 직감한 것이다. 결국 김과 박의 파괴 행위는 진리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려는 욕망의 표현이자 존재의 연명을 의미한다.


이 장면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마지막 명제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를 떠올리게 한다. 〈스포일리아〉의 우주는 앎을 향한 인간의 탐구가 오히려 자기파괴로 귀결되는 아이러니의 공간이다. 영화 속 자살한 생명체들, 그리고 마지막에 스스로 손목을 긋는 김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듯 이 영화에서 ‘앎’은 구원이 아닌 존재의 해체를 의미한다.

 

 
“나도 저 입을 없애버릴 수만 있었다면 아직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무지를 동력 삼아 살아갈 의미를 붙잡고 있었겠지"
  

 

진리를 소유한 자는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고, 질문 없는 존재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갖지 못한다. 결국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알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알 수 없음에 머무르는 용기다. 이세형 감독은 그러한 무지를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불완전성을 견디는 윤리로 제시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끝까지 붙잡고 바라보는 태도.

 

그러한 불완전성과 용기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다.

 

즉 〈스포일리아〉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여전히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완전성 속에서 인간은 사유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말해지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의 존속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지막 조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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