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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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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스로 만들어 놓은 병동 안에 나를 가두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곳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외부의 시선과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곳이 가장 안전하고 믿었던 시절. 병은 나를 갉아먹었지만, 동시에 '병자'라는 역할은 나를 세상의 책임으로부터 잠시 면제해주는 역설적인 안도감을 주었다. 저자의 글은 그런 오래된 심리의 뒷골목을 조용히, 집요하게 비춰준다. 특히, 그의 시선은 병을 가진 사람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단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형태로 존재하는 인간'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깊은 위로와 공감을 주었다.

 

병과 제도, 그리고 병원을 벗어나도 결국 다시 그곳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 수잰은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했던 시절의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병을 단순한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과 삶을 재조명한다. 그가 바라보는 정신병원은 '치료'라는 이상적인 목적인 가진 공간이기 이전에, 의존과 반복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귀환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고립된 세계다. 그래서일까. 책의 첫 장부터 느껴지는 공기의 밀도, 낯선 규율, 병원 특유의 냄새가 활자를 넘어 나를 조심스럽게 물러서게 했다.

 

수잰은 병원을 벗어난 바깥세상이 결코 완벽한 자유를 보장하지 않음을, 오히려 그곳의 불확실성이 다시 사람들을 익숙하고 안전한 병원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역설적인 힘을 목격하고 기록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오래 머물렀다. 퇴원 후에도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렴품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벗어나고자 애쓰는 그 어떤 감정이나 관계도, 사실은 익숙함이라는 가장 강력한 이름으로 우리를 다시 불러들이곤 하니까.

 

정신병을 겪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과 분리되는데 '입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분리는 훨씬 더 강력하고 낯선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낯섦은 내 안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과 불안을 거쳐 결국은 삶이라는 감정으로 흘러갔다.

 

어린 시절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 준비되지 않은 새 가족으로의 편입, 이후의 불안정한 삶의 서사를 읽는 동안 이상하게도 낯선 이야기 속에서 익숙한 내 모습을 봤다. 그녀의 슬픔이 꼭 나의 슬픔과 같아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느끼는 방식과 깊이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문장 사이마다 스며 있는 '어쩔 수 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의 온도가 특히 그랬다. 그것은 맟치 존재의 근원적인 딜레마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나를 나이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는 이중적인 감정.

 

 

나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사실 다른 삶을 원했다. 그걸 인정한다는 건 내가 받았던 보살핌을 잃을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p. 385)

 

 

『의미들』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명쾌한 회복의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시간은 뒤섞이고, 서사는 종종 불연속적이다. 이는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이다. 정신의 불안과 고통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완성된 이야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의 글은 고통의 순간, 불안의 상태 그 자체를 문장으로 박제한다.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온 흔적, 그리고 글을 통해 그 싸움을 '의미화' 하려는 시도가 여기 있다. 고통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삶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 말이다. 그 과정은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오직 진실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이 책을 무겁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단순히 정신병이라는 주제 안에 갇힌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고통과 화해하며 끝없이 '의미'를 찾아 헤매는 모든 시도의 기록이다. 문학이 어떻게 '살아남기 위한 언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생존 수단으로서의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수잰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품고 있는 고통, 상처, 불안 그리고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붙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곧 삶이라는 것. 그 사실이 우리를 조금은 덜 외롭고 덜 비참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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