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베트남에서 큰 흥행을 거두고 최근 한국에 개봉한 베트남-한국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떠나보냄과 남겨짐의 감정을 가족애라는 감정적 구조 안에서 직조한다. 올해 초,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역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가족애라는 정서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작품 모두 아시아 지역 특유의 가족애의 감정과 구조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서적 흐름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한 가지 추천할만한 작품이 있다. 영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이라는 태국 영화이다.
태국 특유의 채도 높은 여름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철부지 손자 ‘엠’의 시선을 따라간다. 누군가를 정말로 떠나보낸다는 감각,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얽힌 속물적인 진심과 슬픔 사이의 온도차를 너무도 담담하게, 그러나 예리하게 그려낸다. 고정된 카메라의 안정된 구도, 프레임 속에서 동시에 흘러가는 인물들의 삶은 보는 이에게 각자의 여름날을 떠올리게 한다. 따뜻한 공기 속에서도 서늘한 바람처럼 스며드는 감정들. 이 영화는 그렇게, 작고 조용한 방식으로 큰 슬픔을 말한다.

화면 안에서 피어나는 여름의 프레이밍
영화의 첫인상은 단연 영상미였다. 제한된 움직임 안에서도 프레임의 구성을 다채롭게 만든다. 구조물과 소품, 인물들의 배치로 한 화면 안에 두 가지 상황이 분리되듯 공존한다. 여름의 태국, 햇빛에 쨍하게 반사되는 색감들은 화면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감독이 컷 하나하나 공들였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러한 정서적 풍경 위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뻔한 듯 익숙하지만 묘하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다른 문화임에도 공유되는 가족의 감정, 그 보편성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도, 나라의 배경도 다르지만 묘하게 한국적인 정서와 닿아있다. 어쩌면 그것이 동아시아 가족문화의 특수성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이 진짜 보편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전개가 예측 가능한 데도 묵직한 감정이 밀려온 건, 타국의 이야기임에도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선이 우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변 어디선가 본 듯한 따뜻함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엠이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할머니에게 카메라 필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익살맞은 장난 이후, 엠은 할머니 옷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조용히 떼어낸다. 철없고 속물 같던 엠의 태도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것은 그의 성장의 시점이자, 관객에게 전해지는 따뜻한 울림이기도 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가 있다. “너도 수확을 위해 씨를 뿌리는 중인 거지?” 이 대사는 엠의 이기적인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던 할머니의 조용한 직시이자 묵묵한 포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할머니는 알면서도 엠을 책망하지 않는다. 이 말 한 마디에 노년의 인내, 가족을 향한 깊은 정, 그리고 슬픈 지혜가 담겨 있다. 처음엔 유산을 목적으로 돌아온 철부지 손자였지만, 할머니의 옷에서 조용히 머리카락을 떼어주는 엠의 손끝엔 어느새 진심이 깃들기 시작한다. 핸드폰 필터로 장난치고, 다시 진지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 변화의 결은 얄팍하지 않다. 우리 모두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혹은 경험할 법한 ‘잃어가기 전에서야 깨닫게 되는 감정’이었다.

사이에서 머문 이의 말들, 무지개처럼 지나간 시간들
이 영화에서 인상깊게 다가온 건, 할머니가 중국계 태국인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녀는 종종 중국어나 조주어를 섞어 말하고, 엠은 그 말을 못 알아듣는다. 언어가 다르고 말이 어긋나는 그 짧은 순간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서서 누군가가 얼마나 오래 어떠한 ‘사이’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태국 사회 안에서, 그리고 자기 가족 안에서도, 늘 가장 조용히 기다리고 사랑해왔던 사람. 목소리는 작고, 기대는 크지 않지만, 늘 자식과 손주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사랑은 끝내 짝사랑이 된다. 조건 있는 애정만 오가는 관계 속에서, 혼자서만 무조건의 사랑을 주던 할머니는 우리에게 잔인할 정도로 사무치는 그리움을 건드린다.
‘레인보우’는 자주 등장하지도, 극을 이끌지도 않지만, 미묘하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녀는 할머니에게는 가장 가부장적이고 냉담했던 장남의 딸이자, 엠에게는 세대 차이가 나는 사촌 동생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는 한 발 비켜서 있지만, 그 거리감 덕분에 레인보우는 오히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 지점처럼 보인다. 그녀는 할머니의 지나온 삶을 직접 알지 못하지만, 그 삶의 결과로 태어났고, 엠이 지나온 시간을 막 통과하고 있으며, 또 다른 ‘가족의 방식’을 배워가는 인물이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드는 순간 잠시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그녀의 짧은 등장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순환되는 구조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우리는 늘 가족을 영원한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가장 덧없고 변하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중요하다. 레인보우는 그 흐름 속에서 말없이 존재하는, 잠시 머물렀기에 더 또렷하게 각인되는 이름이다.

낯설지 않은 감정선, 오래도록 감싸는 여운
이 영화는 일본 영화,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일상적인 리듬, 절제된 감정 표현, 천천히 쌓아올리는 울림. 여기에 더해지는 동남아 특유의 색감은 대만 청춘 영화의 향수까지 불러온다. 그렇게 낯설지 않은 카메라 톤과 감정선이 관객을 감싸안는다. 이야기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그것을 어떻게 들려주는가에 대한 감독의 선택이 탁월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보내고, 남는 이의 몫에 대해 말하는, 그 자체로 단단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주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은 죽음을 직접 다루는 이야기다. 그러나 죽음은 종착지가 아닌, 관계의 마지막 시간을 환하게 비추는 조명으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떠나가는 사람을 위한 예의이자, 남겨진 이들을 위한 조언이자, 위로이기도 하다. 죽음을 통해 가족이, 삶이,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고, 조용히 그러나 깊이 울린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 한 장면, 한 감정에 머무르는 법을 잊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오래도록 따뜻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