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솜을 사기 위해 주차장 건너편에 있는 약방으로 달려갔다. 그 여자를 위해서 어디론가 마냥 달리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고 있는 몸에 썩은 감정들이 달라붙은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솜을 사 가지고 왔을 때 달라붙을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솜을 사 가지고 왔을 때 그 여자는 없었다. 찢어진 통장의 종잇조각들만 마음의 쓰라린 파편으로서 땅바닥에 널려져 있었다. 나 역시 그 여자와의 완전무결한 몌별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증오의 고통도 함께 찢어져 버린 것이다.
*몌별 : 소매를 잡고 헤어진다. 섭섭히 헤어짐을 이르는 말
_무진기행 <서울의 달빛> 마지막 장
<무진기행> 10편의 단편소설 중 <서울의 달빛>
김승옥의 단편집 <무진기행> 속에는 1960년대 시대 배경의 10편의 단편소설이 있다. 1960년대라는 배경 속에서 그는 도시의 냉기, 청춘의 혼란, 관계의 어긋남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중 마지막 단편 <서울의 달빛>은 김승옥 특유의 감정선이 가장 부드럽고, 또 가장 쓸쓸하게 남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비행기 안에서 연예계에 종사하는 한 여성을 처음 만나 인연이 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한 이유는 아내가 결혼 전, 성경험이 있고 심지어 낙태를 수차례 했던 것을 알게 되어 작품 속 그는 “도깨비들이 실컷 뜯어먹다 버린 썩은 고기”라는, 당시 사회의 잣대를 그대로 반영한 폭력적인 표현으로 그녀를 단정한다. 남자는 그녀를 만나기전에 수차례 다른여자와의 성경험으로 성병을 갖게 되고 자신때문에 성병에 걸릴 지도 모르는 아내가 걱정되어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의 아내는 성경험이 하나도 없을 거라 굳게 믿었기 때문에, 아내의 성경험은 배신이였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졌다.
단편소설 <서울의 달빛>은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떠오르게 한다.
<서울의 달빛>과 <드라이브 마이 카> 여자 주인공(아내) 모두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것으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와 멀어지게 되는데, <서울의 달빛>에서는 다른 남자와의 성관계를 목격하거나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옛 시대 상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아내의 가벼움에 스스로 밀어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혼하고 나서 그는 아내를 그리워하게 되고, 자신이 위자료로 건넨 아파트에 찾아가겠다는 말에 아내는 거절한다. 아니, 그가 약국에 간 사이에 아내는 사라져 버리고 그 이별을 '몌별'이라고 표현한다. 아내는 위자료 그 자체로 생각했고, 그와 반대로 그는 이건 위자료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자는 뜻에서 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끝내 말하지 못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 에서는 아내가 죽었지만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묵인한다. 묵인해 준다고 해야 하나. 동일한 상황도 아닌데 왜 <드라이브 마이카>와 연결 짓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별 이후의 그리움과 미묘한 거리감이 두 작품에서 닮았다고 느낀 것 같다.
<서울의 달빛>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혼한 아내를 찾아가려 하지만, 이미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서울의 달빛’을 보며 그때는 알지 못했던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의 부드러운 잔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가 아내에게 어떠한 상처를 받았든 간에.
헤어지고 나면 보이는 것들, 느껴지는 감정들이 분명히 있다. <서울의 달빛>의 "달빛"은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남은 따스한 감정을 의미하는 듯하다.
두 작품 모두 “사랑했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여성”을 다루고 있고, 남자 주인공은 그 미해결된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남자는 아내의 외도를 ‘묵인’하면서도 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서울의 달빛>의 남자 주인공 역시 이혼 이후에도 미련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 그는 결국 아내에게 찾아가지만, 그마저도 ‘이미 늦은 말’로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사랑의 상처를 감정적으로 ‘추체험’하는 남자 이야기로 보인다.
<서울의 달빛>은 '남자가 여자를 밀어내고 후회하는 구조’지만, 실제로는 남성의 자존심과 불안이 만든 자기 파괴적 결별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결국 이해의 부재를 그리움으로 감상화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의 ‘몌별(滅別)’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건 단순한 ‘헤어짐’이 아니라, 감정의 불꽃이 사그라진 후의 잔열 같은 이별이다.
단지 육체적 배신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은 감정의 잔상"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서울의 달빛>의 달빛 이미 사라진 사랑이 남긴 부드럽고 씁쓸한 빛으로 상징되는 듯 하다.

소설
*추체험 :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낌. 또는 이전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것처럼 느낌.
<무진기행>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김승옥 작가의 얼굴과 글이 있다. 소설을 왜 읽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라고 말하는 김승옥 작가는 소설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나의 이전 경험을 다시금 이해해 볼 수 있다는 말로 느껴진다. <무진기행> 속 단편소설들을 여러 개 읽으면서 되게 옛날 배경임에도 인물들의 상황을 흐름에 따라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읽어가는 게 소설의 묘미인 것 같다.
무진기행의 <서울의 달빛>을 읽고, 이 글이 누군가에는 어떠한 부분에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혹은 상대는 아무렇지 않지만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소설이란, 나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서 소설의 부분들이 추체험으로써 인간적의 나약함 등에 대한 어떠한 공감을 느끼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