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워크숍: 뚱딴지같은 단어 조합
책 제목부터 나에게 생뚱맞게 다가왔다. 고독사는 외로울 고(孤)+홀로 독(獨)+죽을 사(死)라는 한자어의 결합으로, 홀로 삶을 마감하는 슬픈 단어다. 반면 ‘워크숍(Workshop)’은 여럿이 모여 생각을 나누고 배움을 실천하는 집합적 행위의 공간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이 두 단어가 하나로 붙어 있는 모습은 기묘했다. 홀로 살다가 주위 사람들 모르게 죽는 일인 고독사와 집합교육의 형식으로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학습하는 워크숍이라는 상반되는 단어의 조합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모순되는 것들의 조합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홀로 죽음’과 ‘함께 배움’의 결합이라니.
하지만 이 낯선 조합 속에 이 책의 주제, 즉 고독과 관계, 죽음과 연결의 모순된 공존이 이미 암시되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고독을 학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고독이 개인의 끝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으로서 관찰되고 논의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모순적 존재들, 고독사(孤獨死) vs 고독사(孤獨史)
이 책 속 인물들은 명확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들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다. 불의한 현실 속에서도 나름의 ‘선’을 추구했지만, 결국 타인의 불행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행이야. 내가 아니라서.”라는 한마디는 그들의 자기방어이자, 동시에 타인에 대한 폭력이다. 고독사 워크숍의 인물들은 이러한 모순적 존재의 초상을 담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로이 사라져간 이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그 무관심을 방조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고독사’는 단순한 죽음(死)이 아니라 고독의 역사(史)를 뜻한다.
각 인물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의 흔적은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며, 그들이 살아온 시간 자체가 ‘고독의 기록’으로 남는다. 우리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 SNS와 메신저, 각종 플랫폼은 사람들을 언제든 연결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고립감은 더 깊어진다. 연결의 표면 아래엔 진짜 관계의 부재, ‘혼자이되 함께 있는 듯한’ 모순된 삶이 있다. 고독사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고독을 ‘사회적 기술’로 배워야 할 만큼 보편화된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고독함 = 호모 딕티우스와 불가근, 불가원의 시선
고독사 워크숍 참여자들은 서로의 흔적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남긴 포스트잇, 명함, 이메일 한 통이 또 다른 이의 참여 계기가 되고, 그들의 자취가 새로운 연결망을 만든다. 고독이 ‘단절’이 아니라, 다른 고독으로 이어지는 회로가 되는 것이다.
조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고독은 타자의 시선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관찰되는 존재’를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통찰이다. 고독이란 타자 없는 완전한 고립이 아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시선 속에서만 성립한다. 결국 고독사 워크숍의 세계는, ‘연결을 갈망하지만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인간(Homo Dictius)’의 이야기다. 그들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또 그 상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 고독은 혼자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인정할 때 완성되는 공동체적 감정임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고독은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혼자 죽지 않기 위해, 함께 고독을 배워야 한다”
고독을 배운다는 것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해졌다. 난 고독을 두려움으로만 배워왔다. 하지만 이 책은 고독을 ‘훈련할 수 있는 감정’으로 제시한다. 즉, 고독은 피해야 할 병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근육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고독사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이웃, 직장 등 사회적 연결망이 느슨해지는 시대에 누군가의 죽음은 이미 우리의 관계 구조가 무너졌다는 신호다. ‘고독사 워크숍’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독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고 함께 성찰하는 장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고독은 슬픔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로 바뀐다. 고독은 피해야 할 병이 아니라, 다루고 익혀야 할 감정의 근육이다. 우리가 고독을 두려움 대신 이해의 언어로 바꿀 때, 고독사는 비로소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바뀌지 않을까. 고독을 없애려 하지 말고, 함께 견디는 방법을 배우자. 혼자 죽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고독을 배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