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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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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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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글을 좋아하게 된 지는 꽤 오래 됐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작은 아이일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동시를 외워서 발표하는 걸 좋아했고, 유모차를 탄 동생을 데리고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동화 읽는 시간을 즐거워 했다. 독서를 하거나 낭송을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듣는 칭찬의 몇 마디와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빛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게 짜릿하게 다가왔던 듯 싶다.

 

인정 욕구 때문에 열심히 시를 외우고 책을 읽다 보니, 점차 진심으로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래 아이들이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을 때, 부모님이 책장 가득 채워준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이나 위인전을 읽었다. 숙제를 해야 할 때에도, 그것들을 미루고서 책을 펼치곤 했다. 이처럼 이야기를 읽고,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푹 빠진 채로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왔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때까지, 본의 아니게 많은 일들을 겪게 됐다. 지나치게 맑고, 말랑하고, 여렸던 나는 감당하기 벅찬 힘듦을 겪으면서 성격이 변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동시를 곧잘 낭독하며 즐거워하던 시절의 아이는 사라졌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꺼려졌다. 혹여나 말실수를 할까 두려웠던 감정도 있었고, 내가 했던 말들이 오독되는 경험을 하면서 점점 입을 다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은 생채기가 가슴 한 켠에 쌓이며 슬픔에 젖어드는 날이 잦았다.

 

신나게 떠들며 훌훌 털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집에서 첫째였던 나는 힘든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혼자 모든 걸 끌어 안고서 앓았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아픔을 공유하지 않은 채로. 대신 그럴 때마다 글 속으로 자주 도망쳤다. 힘들어하는 내게 책 속 문장들은 말 없이 곁을 내어 주었다. 그 품은 아주 커다랗고 포근했다.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현실을 잊게 해주며, 몰입의 시간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활자와 함께 있을 때면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그 즈음부터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 일기도 썼다. 상황과 함께 내가 느꼈던 감정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를 문장으로 작성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짐과 동시에 현재를 조금 더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행위 자체에서 자아효능감을 덤으로 얻기도 했다.

 

*

 

그렇게 나는 말보다 글을 더욱 선호하게 됐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던 시절엔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푹 빠져 '사람들에게 재미와 위로를 전해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이처럼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위에서 말한 것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아래의 이유가 가장 컸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수정할 수 없지만, 글은 최종적으로 선보이기까지 퇴고를 거듭할 수 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기가 어렵지만, 글은 최종 기고를 하기 전까지는 고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말보다 훨씬 안전한 표현 방식이라고 느꼈다.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고 나면 후회하지만, 문장을 적는다고 했을 땐 후회할 확률이 적어지니까. 또 되감기 버튼도 없고,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상살이에서 몇 번이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퇴고를 하며 처음보다 나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청자의 입장으로 사는 날이 많아졌던 게 글을 더욱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 같은 것처럼, 말에도 그런 게 있나 보다. 듣기만 하고 말하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도 이야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면서, 말하고 싶다는 마음을 해소하는 날이 늘었다. 쓰면 쓸수록 더 나은 문장을 구사하는 일 또한 즐거웠다.

 

이처럼 너무도 좋아했지만, 글을 쓰는 건 역시나 어려웠다. 좋아하는 마음이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며 부족함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나에겐 먹고 살 정도의 재능이 없다는 주변인들을 말을 들을 때마다 글은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분명 나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지만, 정작 스스로를 믿는 힘이 부족해서 글을 쓸 때마다 부족한 나를 마주하는 게 참 힘들었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은 포기하게 되었고, 쓰는 횟수도 줄어 들었다.

 

그렇게 다른 꿈을 갖고서 대학에 진학을 했다. 원하던 전공이었던만큼, 그 어느 때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양한 활동도 하며 즐거운 미래를 그려갔다. 졸업 이후, 전공을 살려 취업도 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보람을 느끼며, 퍽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 때문에 힘든 날이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마음 한 켠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걸 포기한 거지, 글쓰기는 포기가 되지 않았던 거다. 더는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을 했고, 올해로 3년 째 이곳에서 쓰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돈하는 게 어렵다. 종종 글쓰는 게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놓지 않고 싶다. 정돈되지 않는 것일지라도, 계속해서 쓰고 싶다. 뭐가 될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글은 힘들었던 시절을 견디게 해주었고, 씀으로써 스스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었으며, 격변하는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행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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