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좋아하냐는 말에 쉽게 대답하지를 못하겠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시들이 너무나 많아서일까 아니면 그다지 창창한 해석의 나래를 펼쳐 읽어내는 게 아니라는 머쓱함에서일까. 아무튼 시만 생각하면 나만 궁금해하는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시와 시인이 있고 그 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세계를 잠시 엿보게 해주는 <시 보다> 시리즈가 반갑고 좋다. 시를 좋아하세요? 라는 포괄적인 물음에는 주저하면서도 000 시인을 좋아하세요, 혹은 이 시집 좋아하세요? 하는 물음에는 강하게 끄덕이는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은 시집을 소개한다.
다섯해 째 출간되는 <시 보다> 시리즈는 문지 문학상[시] 후보작을 묶어 출간해오고 있다. 올해는 데뷔 10년 이하 시인들이 2024년 5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발표한 시들을 검토하고, 여덟명의 시인들이 선정되었다. 구윤재, 김복희, 김선오,문보영, 신이인,유선혜,이실비,한여진 각 작가 별로 시 4편과 그들의 생각과 시상을 담은 시작 노트, 선정위원들의 추천의 말로 이어지는 순서로 충분히 시를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은 세 시인과 그들의 노트를 소개하고 싶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아이들이 동시에 뛰쳐나와 서로에게 뭉친 흰을 던지는 어느 오후 아직은 빛이 공평하게 아이들의 이마를 반짝이게 하는 오후 누군가 앉은 모양으로 흰이 사라진 벤치가 있는 운동장 끝과 끝에서 뛰어나온 아이들이 흰을 서로에게 던지고 웃고 다시 멀리 도망가는 그런 오후 왼쪽의 아이들과 오른쪽의 아이들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화면 바깥으로 사라지는 동안 이쪽과 저쪽으로 시소가 갸우뚱거리는 아름다운 겨울이 나오는 영화를 우리는 보고 있었다 (후략)
겨울은 양쪽에서 온다 - 구윤재
누군가를 기리는 일은 아주 선명한 장면을 손에 쥐는 일일지도 몰라. 볼 수 없는 누군가가 떠오를 때면 아주 오랜 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것 같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가끔은 언제까지고 깨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언제까지나 객석을 지키고 싶을 때가. (중략) 왜 늘 다 지나가버린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그런데 계속 상연되는 기억을 지나가버렸다고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실은 모두가 숨은 배우라서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이제 저희 차례네요, 말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몸 플레이그라운드. 몸을 내주고 싶다. 그들이 몸소 생각하고 행할 수 있게끔. 거스러미는 그 증거인지도 모르지. 내 생각엔 그런 것 같다.
시작노트 - 구윤재
구윤재 시인은 아주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을 체험하게 하면서도 함께 느껴지는 슬픔을 전해준다. 풍경으로, 인생의 한 찰나처럼 느껴지는 시들이 있다. 분명 스쳐지나간 장면인데 기억조차 나지 않던 순간을 시를 읽으며 기억하고 재창조한다. 동시에 작가의 마음에 있었던 이야기를 살짝 엿보게 될 때 비로소 한번 더 시를 소화하게 된다. 시의 재미는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오지 않나. 요즘 유행하는 교환 독서에도 시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소개한 <겨울은 양쪽에서 온다> 또한 아주 추운 겨울 따뜻한 공간에서 한마디씩 나누고 싶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환자들은 영혼의 색상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가령, 머리맡에 연필꽂이가 있습니다 당신은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싶어서 연필을 집습니다 그러나 깎인 연필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새 연필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연필을 깍지 않습니다 새벽4시인데 왜 연필을 깎겠습니까 그런 힘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걸
일부 환자들은 새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새사람으로 변신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소망입니다
우리의 주된 목적은 마음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빈 구멍의 구조적 완전성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런 힘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걸 - 문보영
자기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은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이야기꾼의 자질은 '존재하지 않기' 일지도 모른다고요. '존재할 생각 없음' '게임에 참여할 생각 없음' '남만 존재하게 하기.' 이건 사실 이타성보다 무책임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다만, 육신 없이 영혼으로만 부유하는 상태가 궁금합니다. 전 늘 죽음이 두렵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느낌을 연습한다는 건, 죽음의 한 모습을 예습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고, 참여자들을 바라보며, 밤과 아침을 알리고, 그런 상태가 죽음이라면...
시작노트 - 문보영
시를 눈으로 보게 만드는 사람으로 문보영 시인을 꼽고 싶다. 글의 구조와 덩이를 나누고 그림을 넣은 그의 시를 통해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분명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읽다보면 그의 작업 과정이 궁금해지는데, 시작노트를 읽으며 또 다른 감상이 튀어나온다. 처음 시를 읽었을 때는 어떤 감정도 없이 건조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생각났다면 시작노트를 읽고난 후에는 기저에 깔려 있는 슬픔과 무기력이 왠지 떠올랐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시를 읽기 시작하자 왠지 비밀을 아는 사람처럼, 내가 시를 쓴 것처럼 읽게 되는 그 순간 시가 좋아진다.
너희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자니 세상의 잠옷이란 원래 이따위일까 사랑받은 옷의 말년이 모두 이 모양이라면 나는 울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침대에서 꿈으로 넘어갈 수가 없을까--- 나는 누워서 옷으로 눈을 닦는다 세상에 아직도 이것을 입고 있다 그리고 처음 이것을 입을 때의 기쁜과 포근함 자랑스러움 안락함이 가슴 중심에서부터 서서히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말이다
미약하게나마 나는 여전히 느끼고 있고 느껴지는 한 괴롭지 않다 느껴지는 한 외롭지 않다 느껴지는 한 나는 똑바로 누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른다 모두 저쪽으로 가버린 사람들이군 영영 저쪽의 사람들이군 어디 보자.... 너희들은 어떤 옷을 입고 다니게 되었니
꿈의 옷 - 신이인
사람들은 시인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시인이라고 하면, 종종 하찮은 초능력자가 된 것처럼 이목을 끌고 귀여움을 받는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면 주변의 기대를 충족해주고 싶다. 사탕 껍질 같은 미사여구를 달아가며 난 이토록 재미있고 특별한 시인이라고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정작 내가 아는 시인이란 오래전부터 마른 오이와 연산군 같은 거였다고 고백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시는 나를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시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엇에 전율하고 무엇에 분노하며 무엇에 작아졌다가 커지는 존재였을지 알 수 없다.
시작노트 - 신이인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빛이 난다. 신이인 시인의 시작노트를 읽으며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하찮음과 평범함에는 그럼에도, 라는 강력한 전제가 있다. 그럼에도, 시가 좋아서. 그럼에도, 시가 있어야 해서. 모든 게 뜨뜨미지근하게 생각을 표현하기 어렵고, 그것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나는 그럼에도 이것이 좋아서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얻는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조금의 무력감과 삶을 응시하는 끈기가 아름답다. 시 '꿈의 옷' 역시 어떤 대상을 빤히 바라보고 그려내는 동시에 기저에 강력히 느껴지는 슬픔을 언뜻 언뜻 열었다 숨긴다. 그 잠깐의 장난이 그의 앞으로의 시 세계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시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불쑥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독자들 또한 시에 대해 생각은 다소 아리송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한국 교육 과정에서의 시는 느끼기 보다는 해석하고 알아야 하는 정보값처럼 강요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늘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이 바로 족쇄 풀린 듯 해소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정확히 알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들의 짧은 노트를 읽는 일이 조금의 힌트가 되어주고 점차 나의 감상과 해석이 주가되는 순간, 더 많은 시의 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 그 취지를 잘 담아낸 <시 보다 2025>를 이번 겨울 함께 읽어본다면 훨씬 더 와닿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