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품에 대해 우리는 흔히 ‘디자인이 예쁘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일상에서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미적인 요소와 자주 연관된다. 그러나 디자인의 본질은 단지 ‘보기 좋은 것’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불편을 해소하며,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김병수 작가의 도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모두를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는가?” 저자는 9개국, 300명의 인터뷰를 통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디자인 사고’에 관해 연구했다.
이 책은 각국의 수많은 디자인 사례를 통해, 디자인 설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제시한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모두가 경험하거나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과 서비스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책의 1장에서는 냉장고의 사례를 소개한다.
일반적인 냉장고는 세로로 길게 설계되어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냉동칸에 손이 닿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가 기술의 한계가 아닌 시선의 한계라는 점을 짚는다. 실제로 해당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 키와 동선에 맞춘 맞춤형 냉장고를 개발하며, 디자인이 사회적 배려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 Steve Morgan / Close-up of wheelchair ramp deployed at front door of Gillig low-floor bus - Albany, Oregon (2018)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이 문제는 하나의 제품뿐만 아니라 일상의 공간 전반으로 확대된다. 과거에 비해 저상버스 보급률은 상승했으나 실제 휠체어 이용자의 승차 경험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한 개인의 하루는 멈춘다. 즉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제품과 공간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제품과 공간 디자인의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도록 한다.
현장의 소리
좋은 디자인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결과물이 탄생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물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플레이펌프’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들이 펌프를 돌리며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시스템은 언뜻 보기에 혁신적이었으나, 실제로는 현지 주민의 생활 방식과 맞지 않아 곧 사라졌다. ‘현장 부재형 기획’의 전형이었다.
▲ NevinThompson / Ishikawa Prefectural Library (main hall)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반면 일본 이시카와현립 도서관의 사례는 달랐다. 건축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를 직접 참여시켜, 기존 가이드라인이 아닌 실제 이용자의 체감 치수를 기준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결과적으로 이 도서관은 장애인뿐 아니라 어린이, 노인 등 누구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결국 현장성과 데이터의 균형이 오늘날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이 원리는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공공시설의 가이드라인이 아무리 세분되어도, 실제 사용자의 경험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본질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사용 과정에서 드러나는 관계에 있다.
결국, 삶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은 단순한 편의 증진을 넘어선다. ‘편하다’라는 것은 단지 물리적 불편이 해소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가능성이 보장된 상태, 즉 자유의지가 실현되는 환경을 뜻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바로 그 자유의지를 사회적 차원에서 확장한다. 휠체어 이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한 접근성 향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의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다.
선택은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통로다.
-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p.245
작가는 ‘불가능한 것’과 ‘가능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전자에는 인간의 선택권과 자유의지 보장이 포함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이 둘의 틈을 좁히는 사회적 장치이며, 결국 ‘모두를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디자인은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사회적 언어다. 공공 인프라와 제품, 서비스 곳곳에서 여전히 특정 집단만이 이용할 수 있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소수를 위한 ‘배려’를 넘어, 모두가 자유의지에 기반하여 접근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디자이너나 건축가뿐 아니라, 공공정책을 설계하는 행정가와 기획자에게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결국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