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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안녕하세요. 정경선입니다.

 

저는 4-2학기를 맞이하면서 회사와 학교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어요. 사실 이번 [사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풀어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습니다. 뻔한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렇게 주제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던 찰나 어떤 하루가 문득 저에게 해답을 주었습니다.

 

밤 11시 무렵, 회사 불을 끄고 나오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오늘도 고생했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나왔는데,  저 큰 대로 앞, 휘향찬란한 분수대가 눈길을 끌더군요. 여전히 꺼지지 않은 건물 불빛도 함께 말이에요. 그 순간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눈부신 건물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그리고 언젠가는 폐허로 남을 거라는 확신도 함께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반짝이는 도시의 장면 속에서 오히려 지치고 버거운 마음을 느낀 적 말입니다. 저 역시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라 그럴 때면 본가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숨을 고르고 싶어집니다. 그 시간이 저에겐 큰 위로가 되거든요.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이 있는 곳은 어떤가요? 위로를 받기에 충분한가요?

 

개인적인으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면 가끔 보고 있는 것 조차 버거운 도시가 환멸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 환멸들을 탐하고 바래오다 마음을 다친 사람들 그리고 그런 현장을 짧은 시간 많이도 봤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빽빽합니다. 높은 건물들, 욕망이 스민 눈빛, 끊임없이 유혹하는 화려한 풍경까지. 문어가 촉수를 뻗듯 인간의 욕망은 도시 구석구석에 닿고 끝내 한 지역의 단물을 다 빨아들이곤 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잠재적 폐허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욕망이 서린 초조한 도시’에서는 공간과 장면,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께 비춥니다. 현장의 냉기가 함께 전해지기도 할 텐데요. 그 가운데 광주 학동 참사 현장을 주로 담았습니다. 글을 쓰며 저 역시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떠올리게 되었듯, 여러분도 이 글을 읽으며 스쳐 가는 누군가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려주시면 좋겠습니다.


ps. 언젠가 더 나은 건설 현장을 함께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환호할 땅조차 허락되지 않은 88]


 

함성과 환호를 일궈냈던 과거로 돌아갑니다. 어린이들의 굴렁쇠 소리와 비둘기의 성화봉송이 한국의 성장을 상징했던 쌍팔년도. 상계동의 아이들도 환호성을 내지른 주인공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죠.

 

이제라도 알게되어서 다행이라는 댓글이 가득한 ‘상계동 올림픽’ 다큐 영상을 보시면 이러한 상황이 좀 더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1987년 6월 항쟁과 함께 가장 치열한 철거 투쟁의 현장이었던 상계동 173번지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분 혹은 초 단위의 성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40여세대의 우리나라 주민들의 주거권이 위협받은 것이죠.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학씨 아저씨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공무원들과 합세해 “여, 비켜줘야 된다니까”라고 하자, 애순이가 대자로 눕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차라리, 나를 밟고 가라. 안 그러면 한 발자국도 못지나간다.” 이 대결 속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판타지적 요소가 빠질 수 없는 게 드라마 아니겠어요? 결국, 애순이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터를 잡고 생계를 위해 힘써온 공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드라마와 동일하지만, 누가 내팽겨쳐지느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상계동 173번지의 주민들은 처절히 서울 밖으로 내쳐집니다. 아, 물론 그 전까지 투쟁의 목소리는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이내, 힘없이 넘어가고 말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끝까지 같은 자리에서 살 땅을 찾았지만 전부 거부당하고 500평의 경기도 부천시의 땅을 마련하게 됩니다.

 

어렵게 어렵게, 각자의 소중한 것을 모으고 팔아 마련한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생각하죠. 다시는 철거나 이사 걱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88년 1월 8일, 부천시 행정관들이 들이닥쳐 적법한 절차를 밟아 건물을 다시 지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건물 신청도 불가능하다고도 덧붙이죠. 시민들의 전입을 온갖 수를 써서 막고, 군경을 동원해 합판을 뜯습니다. 그 추운 겨울 집단구타와 모욕적인 언사가 이어집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88년 9월, 단 1분도 채 안되게 성화가 지나간다 하여 이러한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현재, 노원구 상계동은 빽빽이 아파트로 들어찼습니다. 한 아파트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도 않아요. 개발이 된 아파트는 다시 철거되고 재개발되며 건물들은 옷을 새로 입습니다.


다큐 ‘상계동 올림픽’의 마지막 장면은 주민들의 노래소리를 주로 담았습니다. 서서히 블랙아웃되는 검은 화면 속 심각해진 제 표정도 눈에 띄더라고요. 어쨌든, 처음 다큐를 볼 땐, 좋지 않은 화질 속에서도 주민들의 표정을 보려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 다큐를 볼 때는 내레이션에 집중해서, 세 번째는 마지막 장면의 가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힘차게 나아가세”


주거권을 잃어본 적이 없어, 감히 마음을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런 생각은 해봅니다. 나는 이렇게 희망적인 가사로 슬픔을 승화시킬 수 있을까 하고요. 새삼 과거 조상들의 장례식 모습에서 구슬픈 노래로 죽은 이의 영을 달래주는 게 생각나네요.

 

죽은 이의 영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주민들 스스로가 각자의 마음을 노래로 달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무한궤도, 광주 ‘소비의 중심’에 서다]


 

제가 사는 광주에도, 건물을 더 높이 쌓으려는 욕망 끝에 참사가 난 사건이 있습니다.

 

2021년 6월9일 발생한 ‘광주 학동 참사’인데요. 아파트의 모습을 채 띄기도 전, 건물이 괴물이 되어 지나가던 버스를 덮치며 시민 17명이 부상과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입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습니다. 건설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요?


광주시 유스퀘어 뒤편에는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학동참사의 건설사인 HDC 현대산업개발이 참여한 현장인데, 이곳에서도 건설노동자 6명이 추락사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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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서 있는 곳은 사고가 난 지점입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운림51’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한 분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곳 ‘동구 학동 4구역’에 오래도록 거주하셨다는 할아버지는 “(광주 학동 참사를 말하며) 처참하죠. 근데 4년이나 지난 그 사건은 왜?”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고 현장 사진은 더 참혹해서 제 글에 싣고 싶진 않아 가벽이 높게 설치되있는 사진을 담았는데요. 뭐라고 해야할까요. 좀 공기가 많이 차가웠습니다. 분명 더운 여름이었는데 말이죠. 죽은 시신을 마주하듯 냉기가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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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사 공간을 마주하고 있는 폐허가 된 건물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광주 동구 학동을 오려면 버스를 타고 약 스무 개의 정류장을 거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도시, 폐허, 욕망] 이런 키워드에 집중하며 몇 주간 살다 보니 건물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데요. 광주의 상무지구는 특히 화려하고 신도시 느낌의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공간도 몇십 년 후면 결국,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바로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십 년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오래된 자전거 수리점인 ‘코렉스 알톤 자전거 총판’에서 한 중년의 남성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부지는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여쭤보자 그는 “그거 낙찰됐잖여. 같은 건설사가 또 짓는 걸로. 유가족들 동의도 다 받았어요. 평당 650만 원 받는 걸로 다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전, 글쎄요, 자본 앞에 굴복되어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죽은 자는 산 자를 이길 수 없는 걸까요?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개미들을 잊지말자]


 

한국의 건물은 수직성이 강조돼 꽤나 압도적이고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안 그래도 차가운 도시는 더 차가워 보였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곁을 내주지 않을 것만 같았어요. 텅 빈 공터를 보니 쇠락을 넘어 폐허 위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냉정한 공간 속에서 달을 등지고 폐지를 줍는 주민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본 많은 주민들이 하루를 마냥 비참하거나 서글프게만 보내는 것은 아니었어요.

 

거대한 건물은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환멸을 일으키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건물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설계하는 이들은 ‘우리’죠. 붉은 신호등이 푸른빛으로 바뀌자 발길을 재촉하는 아주머니를 보니 꿈에서 깬 듯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일깨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개미가 줄지어 기어갑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뒷꽁무니를 따라가며 도시를 채우죠. 이 거대한 공간에서 나 하나쯤 사라져도 모르지 않을까 싶어 씁쓸하고 추우시다면, 문득 이런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군밤 장수나 붕어빵 장사를 하시는 분들 겨울에 많이 보시죠? 작은 노점에서 빽빽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은 왜일까요. 행정의 시선에서 보면 군밤 장수 는 불법으로 도시의 공간을 점거하고 있는 철거의 대상이지만, 거리를 걷는 개미의 입장에서는 욕망의 기능에만 충실한 도시에 인간미라는 점을 찍어 도시의 분위기와 맥락을 바꾸는 대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개미들은 자신의 구석에서 매일 새로운 도시의 의미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시 속, 홀로 남겨진 듯이 내 자리가 없다고 느껴질 때면 고개를 들어 또 다른 개미를 바라보세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도시의 얼굴이 그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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