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쌀쌀해진 탓에, '허무'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처음 지원할 당시에, '문화예술'에 대해 설명하며 지원서에 적었던 글이 있다.
["모든 예술은 ’허무‘라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과도 같은 이 단어를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살아가면서 허무라는 꼬리표를 옷에 달린 텍처럼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텍이 한 번씩 거슬리도록 따가울 때, 저는 늘 예술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철학책을 읽었고, 삶의 고통을 작품 속에 표상해 낸 수많은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예술에서 답을 갈구한 이유는 니체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인간을 강건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그렇습니다. 예술은 강해지기 위해, 단단하게 거듭나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열정의 산물인 것이었습니다."]
나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이것으로 모두 설명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가 없던 탓에 그 자리를 과학이 차지했고, 세상에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는 과학책들을 읽으며 살아오자 자연히 삶을 덧없다 느꼈다. 그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유쾌하지도 않았다. 잘 살아내려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개념적으로는 그렇다고 한들, 삶이란 건 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법이기에, 뜬구름 잡는 철학적인 얘기들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하루 앞에서는 힘을 잃기 일쑤였다. 결국은 여느 날과 같이 관습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러한 하루하루 사이에서 한 번씩은 이 '허무'가 너무나 따갑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예술에게로 갔다.
나는 모든 예술가에게는 특유의 '도사'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실존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아주 원초적인 감정의 촉발을 종이에, 캔버스에, 악보에 담아내는 것. 모든 예술의 본질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그를 담아내려는 욕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러한 욕망을 가지는가? 그것은 삶이 아주 찰나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금세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을 글로 남기면, 그것은 저자의 사후 100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읽힐 글이 될 수도 있다.
![[포맷변환][크기변환]208554fgsdl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20200223_iymsneze.jpg)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당신은 예술을 사랑해야 한다.
이때, 예술을 사랑하라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행복해진다는 감각적인 만족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라는 긴- 시간 선을 통틀어서, 계속해서 예술을 삶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늘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예술을 보면, 실패와 성공이 모두 그 주제가 될 수 있다. 오직 ‘예술로의 승화’만이 관건일 뿐, 성취의 여부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니체의 말이 있다.
“진정한 예술은 인간을 강건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긍정하며, 춤추듯 유희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면 모든 것은 그저 향유의 대상이 될 뿐이다. 당신의 삶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언젠가는 끝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야기가 끝나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책 속의 이야기는 온전하게 당신 것이며,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의 삶에는 여러 역경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삶을 진정으로 즐기는 자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삶 자체를 온전한 예술 작품처럼 끌어안고, 유희하듯 살아간다.
당신도 당신의 삶 속의 모든 기쁨과 아픔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