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 찬 바람을 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열린 창밖으로 기운이 밀려오고 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는 간단한 사계절의 수식에도 열등감을 느끼던 가을의 냄새가 옅어지고 서먹한 새해 인사의 냄새가 강해지고 있다.
냄새로 공간을, 순간을, 시간을 인식하는 사람은 꽤 많다. 나란히 걷다가 문득, 겨울 냄새 난다, 맡아봐. 내뱉곤 킁킁거리며 거리를 낮게 걷는 날들이 많아질 수록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꺼내 읽은 KTX 매거진에서 봉주연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다. 기사에 인용된 시는 「주소력」.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면 장소들이 남는다./잘 자라다 가요.”
최대 시속 300km에 달하는 고속 열차 위에 앉아,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좋은 시는 가끔 내 삶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운이 좋게도 시인이 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 해 들은 문예창작론 수업에서 특강을 통해 시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202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의 등단작 「주소력」, 「녹천」 등이 수록된 시집이기도 하다. 시인과의 만남이 끝난 후 제일 먼저 달려가 그의 첫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사람에게』의 맨 앞 장에 사인을 받던 나에게는 반갑고 마음 한 쪽이 아득해지는 신간이었다.
그러니까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서 읽어낸 기운은 이런 것이다. 집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화자와, 마중 나오는 사람 없는 삶에 대한 감각. 이 시집에서 시인은 그 짙은 감각을 냄새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집의 냄새, 기억을 촉발해 내는 후각. 그러니 사전적 정의처럼,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 봉 시인은 그 기운을 통해 여러 집을 떠나온 우리 삶의 정처定處 없음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행할 수 없는 설계 도면들
시집을 쭉 펼쳐보면, 이른바 설계 도면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세 편의 시 제목이 눈에 띈다. 「공원 설계 도면」, 「야영장 설계 도면」과 「정전 설계 도면」이다.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 생긴 공원은 크지 않았다.
가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적이 있어.
공원이 무척 클 거라 생각했다.
이쯤에서 길을 잃었겠다.
방을 떠난 이후에 방을 실감한다.
우린 그때 거기에 있었다.
―봉주연, 「공원설계도면」 전문
그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 생긴 공원”에 서서, “우리”가 “길을 잃었”던 기억을 되돌려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은 “우린 그때 거기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게 만든다.
문득 나는 지난여름, 공인 영어 시험을 공부에 열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Speaking을 연습할 때면 꼭 이런 주제가 등장했다. ‘공원을 없애고 건물을 지어도 되는가?’ 학원에선 답변으로 이런 문장을 만들어내게 시켰다.
‘시민들에게 green space(*녹지 공간)인 공원을 없애고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green space는 시민들의 정서적 건강과 심리적 스트레스 예방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네모반듯한 길에서 경로를 이탈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봉주연은 여기에 주목한다. 지어진 녹지 공간 위에서, 화자는 ”철거된 건물”과 그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스트레스 예방으로부터 멀어진다. 어딘가를, 누군가를 떠나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화자의 태도에 공감할 테다. 우리는 때로 더 나아지기 위해 떠나온 인연에도 없어진 자리를 몇 번이고 되돌아보곤 하니까.
야영에선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오늘 밤에 비가 내릴까.
천장 위로 허공이 있다.
복도식 아파트는 대부분 부엌에 창문이 없어요. 현관문에 있다면 여기서도 얼마든지 맞바람을 맞을 수 있습니다. 바나나가 검게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침실 공기가 답답해서 창문을 조금 열었다. 3월 밤엔 봄냄새를 맡아야 잠에 들 수 있어.
―봉주연, 「야영장설계도면」 부분
“본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태어난 곳을 말해야 할지, 자라온 곳을 말해야 할지, 부모님이 계신 곳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주소력」)던 화자가 등장하는 세계는 이곳에서 이어진다. “나보다 먼저 내 집의 문을 열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물고기는 알아서 한다」)다던 시와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바나나가 검게 익어가는 냄새”가 나는 공간은 “복도식 아파트”, 화자의 기억이 가리키고 있는 집일 수도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쳤다가 왼쪽으로 기울”며 도착한 야영장에서마저 다시 “복도식 아파트”를 상상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어떤 한 사람에게 부재하기에 크게 존재하는 상실이 느껴진다. 집이 없다. 떠나온 곳은 있는데, 도착할 곳은 없는 것이다.
“작년 가을 이 마을에 큰 태풍이 왔었어요. 태풍은 순서를 지켜 찾아옵니다. 큰 상흔을 남긴 태풍의 이름들은 목록에서 빠졌다고 해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게 태풍의 책임은 아닐텐데.” (「야영장 설계 도면」)
“태풍”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처럼, 화자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복도식 아파트”에서 “야영장”으로 이동하며 “두벌잠에 들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기운을 느낀다. 도착한 “야영장”마저도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집이 아닌 장소일 뿐이다.
“바나나가 검게 익어가는 냄새”와 같은 일상적인 냄새는 화자에게 집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그 집은 화자가 그 실재 안에 머무르고 있더라도, 없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 집으로, 또 집에서 어딘가로 떠나왔지만, 그들 중 어느 곳이 우리의 진짜 '집'인지 화자조차도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된 동화책을 펼치면 집냄새”를 맡는 「정전 설계 도면」에서도 그렇다.
내 의지로 불을 끈 건 아니었지만. 어렵지 않게 침실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이쯤에 식탁이 있어야 하는데, 허벅지에 모서리가 닿아야 하는데...... 식탁은 없음으로써 주의를 끌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플러그를 꽂아놓은 선풍기가 돌고, 켜놓은 주방 불이 밝혀졌다. 조금 열어뒀던 베란다 문을 다시 닫고, 주방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식탁은 다시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젯밤 잠은 어디로 갔나요.
―봉주연, 「야영장설계도면」 부분
“집냄새”는 트리거가 되어 잠이라는 무의식에 “눈을 감아도 할 수 있는” 일상의 기억을 불러온다.
“어항에 데려갈 물고기를 고르듯/집이 나를 고르는 것 같습니다./이곳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물고기는 알아서 한다」)라고 말했던 봉주연의 시 속 화자는 “집을 옮기면 평소와 다른 냄새”(「일조권 사선제한」), “야채 육수로 가득한 방”(「절화 꽃다발」), “오래된 자동차를 탈 때면” 맡는 “모과향”, “멀미의 냄새”(「모과」)를 맡는다. 냄새는 기억을 환기하고, 기억은 떠나오거나 도착할 수 없는 집의 장소성을 일깨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에 실린 설계 도면 시리즈는 사실 이행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계획일 지도 모른다. 설계 도면의 존재는 건축물의 존재를 보장해 주는 충분조건이 아니니까. 우리의 존재가 우리가 머무는 집-정처를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처럼.
시인은 그 불안정성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탄 청춘들의 비명을 경험자이자 목격자로서 발화한다. 그때 우리(시인과 독자)는 나란하게 서서, 낮게 걷는다.
봉주연은 “곧 떠나야”하는 “이 집을 사랑하기 위하여”(「장소력」) 시를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틀어놓은 TV에서는 “인간은 사랑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세상을 떠도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떠든다. 우리는 여전히 녹지 공간 위에 서서, 건물이 있던 자리를 가늠해 본다.
다시 방 밖으로 나간다. 계절이 바뀌는 기운이 몰려오고 있다.
*각본 정서경, <북극성>, 2025, 디즈니플러스.
**이 글에서 인용된 모든 시 구절은 봉주연 시인의 작품에서 가져왔다. 편의를 위해 인용표기에 작자표기를 생략하였다. 마찬가지로 인용된 모든 작품은『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