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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박찬욱 감독의 야심작 '어쩔수가없다'는 가족을 위한 가장의 몸부림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사회적 메세지보다 만수라는 개인에 초점을 둬 인간의 자아와 도덕성 그리고 선악을 설명한다.

 

그 증거로 만수는 그저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 위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박희순-이성민-차승원은 모두 자신이 싫어하는 자기 모습을 죽이는 꼴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속에서도 만수는 계속해서 “나는…아니, 우리는”이라면서 말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 면접신에서도 AI로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을수있단 면접관의 말에 그는 초반과 다르게 “그래도 책임자는 있어야 하는거죠?”라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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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박희순)을 제일 나중에 죽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토리적으로 보면 처음 만수는 살인에 대한 무지함 때문에 박희순을 죽일 수 없었지만, 이는 외적으로 보면 박희순은 이병헌에게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만수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고 있고 내심 인정도 하고 있다. 그래서 박희순 죽이기 직전에도 “하기 싫은데…근데 그러면 두 사람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거잖아”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결국은 죽이는데, 이는 그의 아내 미리(손예진)가 한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미리는 “안돼 결혼 또 할 수 없어”라면서 이병헌의 과거 음주로 인한 가정폭력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술 취해서 기도가 막힐 뻔하기도 했단 것도.

 

보아하니 선출은 굉장히 마초적이고 술을 좋아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만수 과거시절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이병헌도 자신이 과거 죽을 뻔했던 방식 그대로 박희순을 죽인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과거시절을 향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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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범모-아라)이성민-염혜란 부부다. 범모는 만수가 가장 동정하는 이였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 못하게 무리수까지 둘 정도로니 말이다. 그것은 현재 자기와 너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라의 외도를 보고 아내 미리를 의심하거나 범모의 “제지 생활만 25년 했어” 멘트를 따라하는 등이 증거다.

 

하지만 만수는 내심 이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범모는 몰골만 봐도 정말 피폐해보이며, 아라의 말도 틀린 거 하나없이 한심해 보이는데, 그것이 곧 자신의 현재이자 미래같기 때문이다. 범모를 죽이려 들때 '고추잠자리' 노랫소리가 커서 만수 목소리가 잘 안들렸던 이유는 만수가 이러한 내면적 갈등을 입밖으로 내보내면서도 범모와 자신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기 귀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시조(차승원)이다. 시조는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살해당한다. 이는 만수가 시조를 가장 자신과 동떨어진 존재이자 한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출을 죽일 때는 자기와 너무 닮았고 이상향이기도 했기에 죽이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시조는 제지 생활을 거의 포기했고 자신이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있으며 거기에 손님한테 무시까지 당한다. 여기서 만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내가 제지생활을 포기하면 살아야 할 인생이 이거구나.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만수는 자신의 프라이드인 제지생활을 더욱 포기할 수 없게 됐다. 마치 평행세계 자신 같은 시조의 삶을 보기가 싫었기에 꽤나 간단히 살해한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시조를 묻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줄을 이용해 둥글 게 만 것은 시조를 자신이 키우는 식물처럼 하등하게 본다는 뜻, 사과나무 아래에다 묻는다는 것은 자신이 키우는 식물들의 양분이 되라는 것 즉 다시 태어나라는 뜻.

 

그런데 시조가 제지생활을 포기하다시피한 건 다름 아닌 가족 때문이다. 당장 딸의 용돈을 줘야 하니까. 하지만 만수는 그러질 않는다. 왜냐하면 실은 가족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사랑한 게 아니라 가족이 자신만 바라봐준다는 데서 나오는 안정감과 우월감을 사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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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족들이다. 우선 그의 아들 시원은 만수의 본능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시원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범죄를 저지르고 그에 대한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는 현재의 만수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만수의 과거시절이 난폭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찬욱 감독은 인간의 본성은 억누르는 것일뿐 바뀔 수 없다고 보는 듯 싶다.

 

다음으로 미리는 만수가 키우는 식물들처럼 온실 속 화초다. 만수의 가정폭력을 참아온 세월, 만수의 살인을 묵인하는 순간 등, 어느새 미리는 테니스, 댄스 등 화려한 삶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온실 속 화초가 돼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말에서도 그녀가 온실 속 화초일지는 알 수 없다. 만수가 선출을 살해하는 순간 그녀는 그네에서 유령처럼 사라져버린다. 이는 기존의 미리는 사라졌다는 묘사다. 그리고 “이제 테니스 같은 거 안해. 저축해야지” 라는 멘트는 곧 그녀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다.

 

하지만 미리가 만수를 완전히 버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로 보인다. 딸 리원의 바이올린 연주를 바라보는 미리의 표정은 ‘그래, 어쩔 수가 없다’ 싶은 심정이었다.

 

반면 만수는 딸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자 귀마개를 하고 일에 집중한다. 비로소 가족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만수는 듣지 않고(들을수 없고) 자신의 이상향만 바라본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되뇌인다. ‘그래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

 

결국 만수의 ‘어쩔수가없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며, 미리의 ‘어쩔수가없다’는 가족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만수의 해피엔딩인 이유는 노동자의 편을 들기 위해서일 수는 있으나, 이런 일이 벌어져도 '이미 어질어질해진 사회가 참 어쩔수가없다'라는 것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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