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정량이란 게 없다고 믿기에 얼마큼 좋아한다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나를 보면 세대를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내 또래의 영화과 졸업생, 영화관 매니저님, 나이 지긋이 드신 영화 DVD 가게 사장님, 그리고 영화를 많이 봤었던 사람들이다. 나는 그 말속에 그렇게 영화를 좋아해도 언젠가는 그만큼 좋아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속으로 나는 이 마음 절대 변하지 않을 테야! 하고 언제나 다짐했다. 근데, 고작 마음 하나 먹는다고 세상 일이, 내 미래가 예상대로 다 되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좋아하는 마음을 지워지지 않는 글로 남겨 변치 않겠다는 의지다. 설령 정말 변하게 되더라도 내가 이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었음을 온전히 느끼고 싶을 미래의 나를 위한 글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축제다. 부국제를 찬양하고 있던 나를 향해 팀장님이 했던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왜 좋으냐 묻는다면 그 기간만큼은 세상이 영화 천지다. 어느 카페를 가도 사람들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어디를 걸어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나와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든 사람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는 내로라하는 감독님들이 방문했다.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뿐 아니라 션 베이커, 기예르모 델 토르, 짐 자무쉬, 요르고스 란티모스, 코고나다 등… 그 때문일까. 이번 부국제 예매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영화제 예매에 실패해 본 적 없는데 이번에는 딱 1개만 예매할 수 있었다. 그것도 1시간을 붙잡고 딱 1개… 상관없다. 취소 표를 구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밌는 영화를 보는 게 부국제의 매력이다. 유명한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GV를 보는 것도 영화제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개봉하지 않는 영화 중에 나만의 인생 영화를 찾는 게 재미다. 작년에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과 <글로리아!>가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를 만날 수 없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 동안 양치기할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하나라도 걸릴 확률이 적었을 것이다. 총 4편의 영화를 봤다. 그중에 3편은 자다 깨다 하며 비몽사몽인 상태로 봤다. 밤새워서 영화 3편을 보는 미드나잇패션도 낭만이라며 예매했다. 아차, 그 3편이 공포영화였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들려오는 비명과 귀신 얼굴에 눈을 질끈 감으며, 맞다. 나 공포영화 못 봤었지… 라고 생각하며 엄청난 음향과 억지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1편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잡고 숙소로 향했다. 아쉽다. 아쉬운 것투성이다. 사고 싶은 부국제 30주년 기념 반팔티도 못 샀고 보고 싶은 영화는 줄줄이 못 보고 영화관에서는 잠이나 잤으니…

그래도 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좋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국제지만 싫지 않다. 그럼에도 언제나 좋다. 매번 이렇게 보낸다고 해도 나는 또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것이다. 비는 시간에 해운대를 거닐며 혹시 내가 좋아하는 감독님이 지나가진 않을까 하는 설레발이 좋다. 나를 스쳐가는 모든 이들이 내가 본 영화를 만든 스태프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상상이 좋다. 다들 MD 샵에서 뱃지나 인형 하나씩 사서 달고 다니는 그 모습들이 귀여워서 좋다. 영화가 재미있든 없든 간에 크레딧이 다 올라오고 들려오는 끊이지 않는 박수소리가 좋다. 그런 박수 소리를 듣고 있을 감독님들의 벅차오를 마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
이번 부국제의 특별한 점은 축하해 줄 사람이 생긴 것이다. 몇 달 전 수강했던 시나리오 수업의 강사님, 우리 회사의 PD님이 이번 부국제에 초청되었다. 강사님은 직접 만나 축하해드리지 못했지만 메시지로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게 되었다. 수업을 받을 적, 영화감독은 일 년 중에 며칠이나 영화감독일 것 같은 지 질문을 던지시곤 단 일주일만 영화감독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랬던 감독님이 이곳에서 일주일 감독에서 2주를 더 감독으로 있는다는 것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부국제에 도착과 동시에 꽃 한 송이를 샀다. 회사 PD님을 만나면 전달드릴 예정이었다. 아쉽게도 그날은 일정이 맞지 않아 나는 그냥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편의점을 들렸을 땐, 편의점 사장님께서 ‘꽃을 선물 받으셨어요?’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아니요 제가 드리려고 샀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꽃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좋지 않나요?’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아는 분이 부국제에 상영을 하셔서요’라고 했지만 편의점을 나와서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꽃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좋지 않으냐… 그러게요. 저도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 받을 만큼 축하받을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누군가를 마음껏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되고 싶어요.
하루 지난 꽃은 어제보다 시들해졌다. 다시 새로 구매할까, 한 송이는 너무 작은가. 걱정스러운 마음이지만 약간의 쑥스러움과 함께 PD님에게 꽃을 전달하고 도망치듯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나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PD님의 메시지가 여러 개 와있었다. 너무 놀랐다, 감동이다라는 진심 담긴 메시지에 괜히 눈시울 붉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종종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지만 나의 다정함은 내 친구들의 것이다. 친구들이 나에게 해주었던 따뜻한 행동들을 내가 또 누군가에게 모방하는 것일 뿐이다. 나의 그 모방한 행동의 출처는 부국제를 함께 온 친구가 몇 년 전 나에게 해주었던 일이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간 부국제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친구의 따뜻함을 전달전달한 것이었다. 오랜 나의 친구에게 하는 고맙다는 말은 꽃 한 송이보다 더 쑥스럽기에 나는 또 속으로만 생각하다 이렇게 5 문장으로만 쓸 뿐이다.
나와 연이 닿은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제에 상영을 한다는 것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평소 상영관을 나와서 별점을 낮게 주기도 하며, 친구와는 재미없다는 비난도 종종 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고 그래서 결론은 보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미 매진이었던 그분들의 영화를 관람하진 못했지만 앞으로는 한국 영화에 대해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렸고, 얼마나 고생했으며,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얼마나 잘 되기를 바라는지 이젠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영화를 다시 한번 사랑해 볼 결심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이니 기꺼이 좋아할 것이다.

기차를 타고 4시간을 앉아 서울로 향했다. 자리는 좁고 불편해서 잠을 자도 금방 깼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피곤하고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아니면 아예 부산에 있거나! 아니다. 그냥 다음에는 우등석을 예매하자 하면서 지난 나의 영화제들을 회고한다. 영화제에선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고 다음 영화를 보러 가려면 제대로 된 점심, 저녁도 못 먹고 삼각김밥 하나 욱여넣으며 하루 종일 배고픈 상태로 다닌다. 그리고 다음 날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눈을 뜨는 건 또 무지 힘들다. 하루 중에 절반이상은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지금 이 기차에서는 시간도 안 가고 고역이다. 늘 그랬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온몸이 쑤신다. 근데도 나는 계속 방문하고 있으며 또 올 거라고 선언한다. 그 힘든 순간을 매번 다 까먹고 다시 예매할 정도로 영화제는 나에게 환상적인 순간순간인가 보다.
나는 100살까지 영화제를 다닐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물론 나이가 들면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을 진 모른다. 마치 영화 DVD 가게 고령의 사장님께 이제는 영화관에 가지 않느냐고 여쭤봤는데, 영화관을 가고 싶지만 이젠 몸이 안 좋아 갈 수 없다고 한 말씀처럼. 그러니까, 갈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오래오래 다니고 싶은 게 늘 나의 작은 소망이다.
나에겐 3번째 방문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긴 시간 동안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준 것처럼 분명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이전 세대, 나의 세대, 그리고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말을 건넬 내 다음 세대의 젊은이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스쳐 지나간 무수한 순간들이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