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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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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산을 잠시 다녀왔다. 따로 구체적인 계획 없이 떠났던 길이라 돌아오는 날의 일정 또한 텅 비어있었다. 서울까지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하니 그냥 바로 올라갈까, 어디라도 들렸다 갈까, 고민을 하며 인스타그램을 킨 순간 내 눈을 한 게시물이 사로잡았다. 누군가가 평소 내가 좋아하던 작가의 전시회 그림을 올린 것이다. 해외에 가서 올린 걸까? 설마 한국에서 전시회가 열렸나? 긴가민가 하며 정보를 찾아 검색해보았다. 그렇게 찾은 전시회는 현재 한국에서 열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 작품의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다니! 떨리는 마음으로 전시회의 위치를 확인해본 순간 나에게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부산현대미술관’이라니, 너무나 보고 싶던 작품이 마침 내려와 있는 부산에 있었다. 이건 도저히 놓칠 수가 없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바로 달려간 전시회를 소개해본다. 바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라는 작가의 이름이 생소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마음 속에 담아둔 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알려진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을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에 힐마 아프 클린트를 각인시킨건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역사 속에 숨어있던 작품들이 관중들의 시선 안으로 확실히 들어온지는 채 10년도 되지 않은 것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1862년생 스웨덴 출신의 여성 작가이다. 출생년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1944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이다. 작가 사후 유명세가 더해지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나 긴 시간이 흐른 뒤 새롭게 일어나는 유명세는 조금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사실 힐마의 그림들은 그녀의 살아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었다. 또한 그녀의 사후에도 곧바로 공개되지 않았다. 바로 그녀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들이 사후 20년동안 공개되지 않길 바랬다. 그 이유는 간단히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미래에 자신의 그림을 알아 봐줄 수 있는 시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길래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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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마는 스웨덴 왕립 미술학교에서 정식으로 미술을 배웠다. 그곳에서 미술의 기초부터 차근히 배우며 장학금을 타내기도 하고, 식물과 동물의 세밀화를 많이 그려내곤 했다. 또한 삽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영역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영혼, 신지학과 영적인 모든 것들이었다.

 

이후 그녀에게 그림은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더 큰 어떤 존재로부터 받아 표현하는 일이 되었고,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을 그려내는 일이 되었다. 때로는 마음이 맞는 여성들을 모아 모임을 구성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대중에 보이지 않고 평생을 그려왔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대중들은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여기며 먼 미래를 기약했을 것이다.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여겼던 이유는 바로 그림이 추상적인 기호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추상화의 선구자라 하면 칸딘스키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힐마의 그림들이 알려진 이후 미술사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추상화가 칸딘스키보다 빨랐던 것이다. ‘최초의 추상화가’, 물론 이 지점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혹자는 추상화라는 인식 없이 어떠한 ‘영매’로써 그려낸 그림을 추상화로 여길 수 있느냐 묻기도 한다. 그럼에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힐마는 미술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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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마의 그림들은 정말 수많은 상징과 기호들로 이루어져있다. 각자의 기호들은 그때마다 유동적으로 다른 뜻을 내포한다. 특히 자주 등장하는 기호는 원, 나선, 삼각형 등의 도형들이다. 그녀는 이러한 도형들을 이용해 특정한 감각들을 그림 안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녀는 색도 이런 표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는데, 그래서인지 힐마의 그림에는 정말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들이 등장한다. 파스텔톤부터 반짝이는 골드 그리고 무지개빛까지 말이다. 알쏭달쏭한 기호들이 화려한 색감들에 둘러 쌓여 있는 모습에 어쩌면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고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그림을 완벽히 해석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표현되어지기 힘든 무언가들을 표현하고자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림 앞에 서서 더 자유롭고 느껴지는 대로 그림을 볼 수 있다고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힐마의 그림의 매력은 그런 지점에서 다가왔다.


그렇다면 그녀의 독특한 스토리도 알겠고, 미술사에서의 가치도 알았지만, 부산에 이 전시를 보러 갈 가치가 있을까 고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힐마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인 ‘10점의 대형 그림’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시리즈는 전시회장의 한 구역의 벽 전체를 덮고 있다. 앞에 서면 목을 한참 꺾어 올려다봐야 다 보일 만큼 큰 그림들이다. 정말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이 한 점도 아니고 무려 10점이나 걸려있으니 그 압도감은 직접 겪어봐야 표현될 것이다. 또 종이에 템페라로 그리고 그 종이를 캔버스에 부착한 채색 방식으로 인해서인지 무언가 일반적인 유화나 아크릴과는 또 다른 오묘한 기운을 내뿜는다. 과거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의 사진들을 보면서도 이 거대한 그림 시리즈가 정말 너무나 궁금했고 또 직접 보고 싶었다. 큰 그림일수록 사진과 실제 관람의 간극은 무자비하게 커진다. 그리고 무려 부산에서 국내 최초로 만난 힐마 아프 클린트는 정말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한참을 그림의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서성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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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운이 좋게 관람하게 된 힐마 아프 클린트의 전시였다. 그 덕분에 이렇게 글로 그녀의 작품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할 수 있음이 기쁘게 느껴진다. 혹시라도 부산에 방문 계획이 있는데 이 글을 읽었다면, 운 좋게 전시를 다녀온 나처럼 꼭 한번 방문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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