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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이름, 체사레 파베세. 그는 고독과 실존적 불안, 그리고 여름의 신화와 함께 기억된다.

 

『파졸리니의 길』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저자 피에르 아드리앙은 『파베세의 마지막 여름』에서 파베세가 태어난 피에몬테 언덕과 그의 고독이 남아 있는 도시 토리노를 중심으로, 작가의 삶과 작품의 자취를 따라 걷는다. 그는 파베세의 마지막 계절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순례를 통해 파베세가 남긴 문장들을 채집하며, 그의 삶에 드리워져 있던 고통의 그림자를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나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덤불 속에 들어간 뒤 기분이 좋아져 나뭇잎 사이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잊어버린 아이처럼, 단순하고 긴 고립 속에서 헛된 휴가를 보내듯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침울하면서도 과묵한 사람”, “짙은 색 정장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있는 외로운 남자”로 묘사되던 파베세는 '우울함이 전염될지 모르니 너무 가까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실제로 시대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긴 고립 속에 있었고, 세상을 향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모든 소란에 침묵으로 응답하며 자신의 시간에 몰두해 있었다.

 

“모래시계가 뒤집혔다. 그 안에는 3주 동안 버틸 양의 모래가 들어 있었다. 나는 파베세의 가여운 삶에서 가장 잔혹했던 것은 들고양이의 죽음 같았던 그의 죽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더 잔혹했던 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갈증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언제나 사람들과의 긴밀한 관계, 온전한 사랑을 갈망하던 남자이기도 했다.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나선 여인 ‘티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대가로 긴 유배 생활에 들어가야 했다. 그 시간을 사랑의 증표라 여기며 언젠가 그녀와 재회할 것을 기대했지만, 기다림 끝에 그가 듣게 된 것은 그녀의 결혼 소식이었다. 그는 시칠리아 출신의 비앙카 가루피, 미국인 여배우 콘스턴스 다울링, 페르난다 피바노와 같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강렬하고도 집요한 사랑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응답받지 못했고,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갈증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괴롭히고 모욕하며 무너지게 했다.

 

“고향은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의미하며 사람들에게, 나무들 속에, 땅속에 당신의 무언가가 있음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당신이 거기에 없을 때도 참을성 있게 당신을 기다린다.”

 

고향 랑게의 언덕에서 보낸 여름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가 평생 간직한 것이었다. 그의 유년 시절, 나아가 태아 시절을 품고 있는 원초적 공간인 고향의 언덕은 그의 삶에 위로와 기쁨을 주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았다. 그는 그곳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보장, 즉 영원한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티켓을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신화적 공간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여름의 햇살, 축제, 포도밭, 언덕과 하늘의 풍경으로 끊임없이 재현해 나갔다.

 

“나를 만져보고 나를 알아보아야 할 손들, 얼굴들, 목소리들이 이제는 없었다. 이미 얼마 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마치 축제 다음 날의 광장, 수확을 끝낸 포도밭 같았으며,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홀로 주막집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도 역사 인간이었고, 나도 역시 변했다.”

 

그러나 시대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기계적 흐름 속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모든 것이 변해갔다.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했고, 파산한 농민들은 경작지를 불태웠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변한 것은 고향만이 아니었다. 저자의 말처럼 그 역시도 "내면의 즐거워하는 소년을 지루하게 만드는 절망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삶은,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어느 정도 낙관주의를 유지한다. 나는 삶을 비난하지 않으며 세상이 아름답고 위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넘어졌다.”

 

그는 세상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마치" 종말의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번번이 좌절되는 사랑과 실존적 불안, 고립, 그리고 신화가 되어버린 고향에 대한 우울한 갈망 속에서 자기 처벌적 욕망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다. 그는 그의 안에서 파괴되고 분해되는 마음을 관찰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바꾸면서, 생애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열정적으로 책을 펴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문학에 영감을 주던 계절, 여름이 되자 귀향에 관한 소설 『달과 불』을 집필하기 위해 스테파노로 향했다.

 

“내가 여기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나는 모른다. 이곳에는 집도 없고, 또한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랬노라" 하고 말할 수 있는 뼛조각하나 또는 땅 한 폐기마저 없다.”

 

그러나 그의 여름은 더 이상 유년 시절 랑게 언덕의 무구한 여름도 아니었고, 알베르 카뮈가 노래한 찬란한 여름도 아니었다. 그에게 남겨진 여름은 “축제 다음 날의 광장”, “수확을 끝낸 포도밭”과 같았다. 그는 자기 자신도 들판에서 돌아온 농부처럼 소진되었다고 느꼈다. 생일을 며칠 앞둔 여름날, 그는 토리노의 한 여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방 안 탁자 위에는 그의 저서 『레우코와의 대화』 첫 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짧은 한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모두를 용서하고, 또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

 

“요컨대 우리는 왜 위대해지고 싶어 하고, 창의적인 천재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 후손을 위해? 군중 속을 걸으며 손가락질을 받기 위해? 아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가치 있고 특별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상의 의무를 견뎌내기 위해서다. 그것은 오늘을 위해서지, 영원을 위해서가 아니다.”

 

*


이 책은 그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앞에서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고통은 읽을 수 있을 뿐, 결코 공유할 수는 없다는 아드리앙의 말처럼 누구도 그의 절망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갈증을 따라 읽어 내려가는 것뿐이었다.

 

끝내 파베세를 무너뜨린, 그의 꽃병을 넘치게 한  마지막 한 방울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순풍이 불고 포도나무 사이로 빛이 흐르는 고향의 언덕”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곳, 되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낙원이 되었고, 찬란한 여름은 이제 그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 되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에 대한 그의 태도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가 괴로워하던 것들은 나를 괴롭힌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오히려 이 괴로움들과, 이 세상과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 속 고통이 역설적으로 내게 삶의 빛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이 말했듯, 비극적인 이야기가 반드시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삶에 반하는 글조차 삶을 붙들고자 하는 유혹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은 죽음으로 끝맺은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삶을 선명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흔적으로 남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가 “단연코 내밀했던 그의 글이 그의 것임과 동시에 우리의 것이 된다”고 말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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