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작품이 걸작으로 남고, 어떤 예술가가 거장으로 기억되는 걸까. 자격증 시험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간단하겠지만, 예술은 사람이 만들고 감상하는 것이기에 절대적인 평가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러나 제각각인 사람들의 취향 사이에서도 유독 주목받고 인정받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은 일종의 브랜드처럼, 그 이름만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거나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곤 한다. 이들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법은 무엇일까?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은 예술과 대중 사이에서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온 이정우 작가가 예술을 전략과 브랜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작품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예술가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다루는 예술가는 총 11명으로, 바로크 시대의 거장인 렘브란트부터 최근에도 영국 런던 왕립 법원에 작품을 남겨 화제가 된 뱅크시까지 모두가 한 번쯤 들어 봤을 이들이다. 예술가를 미술사 속 흐름이나 생애 중심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미술 분야 책과 달리, 각 예술가를 하나의 브랜드로 보고 그 브랜드의 전략을 분석하듯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포지셔닝, 핵심 타겟, 시장 전략 등 어쩐지 예술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들이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더 흥미롭게 읽힌다.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책을 읽다 보면 특정한 이미지를 반복하거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우리가 아는 예술가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전략은 예술가가 살아 있을 때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이다. 고흐는 생전에는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를 겪었지만, 사후에는 남동생 테오의 아내였던 요하나의 노력으로 거장의 반열에 들었다. 요하나가 고흐를 알리기 위해 사용한 전략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테오와 고흐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출판한 『영혼의 편지』다.
요하나는 수많은 편지 중에서도 고흐의 노력과 극적인 인생사가 잘 드러나는 것들을 큐레이션했다. 미술계가 변하며 고흐의 그림이 비로소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에 출판된 『영혼의 편지』는 고흐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에 서사가 더해지며 반 고흐라는 이름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열정을 내려놓지 않은 비운의 예술가’라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늘날 그림만큼이나 고흐의 인생, 그리고 고흐-테오가 주고받은 편지가 유명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요하나의 선택은 탁월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뱅크시가 2025년 9월 8일 공개한 작품. 영국 런던 왕립법원 외벽에 판사가 법봉으로 시위자를 내리치는 그림을 그렸다.
한편, 목차의 끝부분에 소개된 무라카미 다카시와 뱅크시의 이야기는 예술가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어떻게 브랜딩에 활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앞서 소개된 예술가들의 브랜딩이 대부분 스스로의 이미지를 다듬고 작품을 만드는 데 국한되었다면, 이 두 예술가는 작품을 발표하는 방식부터 사람들이 그것을 감상하고 구매하는 방법까지 자기만의 색깔이 드러나도록 전략을 짰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온라인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시대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정통 미술계에서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던 ‘오타쿠 문화’를 일본 전통화 기법과 융합해 ‘슈퍼 플랫’이라는 자기만의 분야를 확립했다. 이후 개인 회사를 설립하고 편의점과 협업해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플랫 뮤지엄-편의점 에디션’을 선보인다. 피규어 작품 40종을 3000점씩 제작, 일련번호를 붙여 한정판으로 랜덤 판매한 이 에디션은 예술작품을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며 다카시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렸다.
뱅크시 역시 그래피티 커뮤니티도 아니고 정통 미술계도 아닌 그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그는 무작위의 담벼락에 몰래 그림을 남기고 사라지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은 매번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 세계에 공유된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뱅크시의 작품을 거의 동시에 접하지만, 정작 뱅크시 본인은 본명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화제성을 유지한다. 만약 SNS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면,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든다 한들 뱅크시가 지금만큼의 명성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폴 세잔, <사과가 있는 정물>, 1890
물론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이 그저 전략으로만 지금의 거장이 된 것은 아니다. 저자도 이 점을 강조한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예술가로서의 성실함과 고집이 없었다면 전략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살바도르 달리’ 하면 우스꽝스러운 수염과 온갖 기행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는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던 기간에도 다른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기도 하다. 폴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일컬어질 만큼 후대 입체파와 야수파에 영향을 미친 거장이지만, 그 뒤에는 칩거하며 자신의 예술을 갈고 닦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있다. 좋은 콘텐츠가 기발한 마케팅으로 날개를 달듯, 전략은 이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예술적 철학에 마지막 점을 찍은 셈이다.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주목받는 예술가로 타고났을 것만 같던 이들도 사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생애를 다룬 책이 아닌데도 예술가들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이유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영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 각자의 삶이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예술 활동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타인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이 먼저 걸어간 길을 따라가 보자.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록 살아남은 전략에서 분명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