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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좋아하는 북캉스를 다녀왔다.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이라 생각하며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놀랍게도 조회수가 폭발했고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 똑같은 여행은 단 하나도 없단 걸. 내가 다녀온 평범한 여정이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사실 그 여행은 삶의 의욕이 바닥나 있을 때 떠난 것이다. 자주 어딘가를 다녀오긴 했지만, 스스로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온전히 쉬고 감상한 건 처음이었다. 여행은 '값비싼 돈을 들여 떠나는,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 일'이라는 식의 무거운 낙인이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잘 놀다 갑니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때의 내 여행이었다. 순수한 즐거움이란 결국 나를 얽매고 있던 것들에서 벗어낫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걸, 이 책이 조용히 상기시켜 주었다.

 

푸릇함이 가득했던 대학생 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 여행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고된 수험 생활 중에서 짬이 날 때마다 찾아보던 건, 페스티벌에서 에너지를 내뿜는 밴드들이나 국내의 숨겨진 여행지들. 청춘의 상징처럼 떠오르던 '내일로' 기차여행, 그리고 언젠가 꼭 떠나야 할 것만 같았던 해외 배낭여행이었으니.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 시절엔 수많은 여행 이야기가 줄줄이 출간되었고, 나는 그 모든 책을 찾아 있었다. 작가들이 본 노을, 낯선 이들과 나눈 대화, 말로만 듣던 유적지의 웅장함. 모두 내 몸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겁이 많았고, 제주도 바깥으로 나서는 것도 무서웠으며, 여행 경비를 준비하는 수고조차 두려웠다. 그떄의 나는 파릇한 열망에 비해 초라한 주머니를 지닌, 그저 도서관에서 누군가의 모험을 눈으로 좇는 청춘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나와 비슷했다. 자신을 '쫄보'라 칭하며 여행에 회의적인 삶을 살아오던 그는, 친구 박서우의 제안으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저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해, 이력 하나를 만들기 위해 떠났던 여행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를 이끌었다. 상냥하지만 냉정한 사람들, 웃으며 돈을 더 받는 상인들, 그 안에서도 그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조금씩 자기 안의 벽을 허물어간다.

 

 

물건 하나에 추억이 덕지덕지 붙어서

여행이 끝난 직후에는 그 흐릿한 시간들을 떠올리기 바빴다.

짐을 하나씩 풀면서, 여행을 끝내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p. 349)

 

 

이제는 여행의 재미를 아는 내가, 이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고 돌아오는 모든 과정은 결국 '그리움'과 맞닿아 있단 걸.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으로 미화되는 유쾌한 기억들 속에서, 나는 배운다. 완벽할 필요하는 없다고. 두려움에 웅크리고 있기보다 한 발짝 내딛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그가 겪은 몽골의 화장실 없는 벌판에서 당황했던 순간, 입국 심사대에서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빠져나온 일, 인도에서 한 소녀와 나눴던 우정. 김은영은 여행의 순간들을 기록하며, 그 시절을 견디게 해준 '동행자'를 만난다.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해롭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삶을 살아갈 용기를 심어준다.

 

새로운 환경에 나 자신을 데려다 놓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짧은 인생에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은 너무도 많다. 수많은 장소를 영상으로 소개한 유튜버인 저자조차, 여전히 여행 앞에서 "도움닫기가 필요하다"고 고백한다. 아직 모르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결국 여행을 끝내기 위해서, 다시 또 여행이 필요한 법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군가는 분명히 짐을 싸기 시작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잘 놀다 오는 일'은 우리 삶에 얼마나 귀한 가치 중, 하나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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