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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작가들이 궁금할 때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다 보면 문득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작업하는 과정, 작가 노트, 작업실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전시실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져다준 그들의 캐릭터를 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개인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로 작가들의 이야기와 전시 준비를 하는 무대 뒤편의 과정을 손쉽게 살펴볼 수 있으나, 전시실에서 본 작품들이 실제로 탄생하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작업실’이라는 곳은 청중들에게는 여전히 신비로운 공간인 듯하다. 작가와 친분이 있지 않고서는 접근이 어렵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작가를 친구로 사귀지 않아도 ‘작업실’ 혹은 ‘작가의 공간’에 찾아갈 기회는 있다. 바로 레지던시의 오픈 스튜디오 데이에 방문하는 것이다. 레지던시란 일정 기간 공모에 합격한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해 주는 기관이다. 프로그램에 따라 홍보, 도록, 재료, 전문가 피드백 등을 추가로 지원하기도 한다. 예술가 복지 차원에서 공간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주제를 제시하고 기한 내에 새로운 결과물을 요구하는 레지던시도 있다. 작가들에게는 레지던시에 입주하면 작업실 임대료를 절약하고 다른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으니 인기가 많다.


이러한 레지던시 중에는 ‘오픈 스튜디오 데이’라는 것을 마련하여 누구나 방문하여 작가들의 공간을 살펴보고, 기회가 된다면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지난 9월 6일, 런던 기반의 예술공간 Gasworks의 오픈 스튜디오 데이에서 마주한 5명의 작가가 지낸 작업실 풍경의 방문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온 Gasworks의 입주 작가들


 

Gasworks는 약 2개월 1주 남짓의 기간을 주기로 한 시즌마다 5명의 입주 작가를 모집한다. 특이한 점은 공모마다 서로 다른 특정 국가나 지역 출신의 신진 작가들을 모집하며, 영국에서의 활동이나 해외 전시 경험이 없는 작가들을 우선하여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번 오픈 스튜디오 데이의 작가들은 그리스, 에콰도르, 인도, 조지아, 파키스탄 출신의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다가오는 공모에서는 서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중미, 팔레스타인 기반의 작가들을 모집한다. 언젠가 한국 기반 작가들을 위한 공모를 열 수도 있으니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자. 비자, 숙소, 교통비 등 풍부한 혜택을 지원한다.


레지던시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을 모집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들이 반드시 문화적 색채가 드러나는 작업만 선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다뤄오던 재료들을 활용해 물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들도 있었으며, 리서치 기반의 오브제 작업으로 작업실을 꾸민 작가도 있었다. 특정 다문화적 주제보다는 서구 미술 기관으로서 비주류 미술계를 지원하고, 런던 미술계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려는 Gasworks의 취지가 돋보였다.

 

 

 

레지던시 탐험, 시작해 보자


 

오픈 스튜디오 데이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시간에 방문하면 그들이 작업 과정과 아이디어를 들을 수 있는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다. Gasworks는 1층에 마련된 작은 프레젠테이션 룸에서 입주 작가들의 발표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2시와 4시에 작가별로 약 20분의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도착한 시간이 발표 시간과 가까워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전 그들의 발표를 먼저 듣게 되었다. 작가들의 공간을 미리 이해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자리였다. 관심 있는 주제, 작업 과정, 최근 인상 깊었던 경험 등 작가들은 서로 다른 다채로운 내용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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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준비한 간단한 ppt와 함께 발표가 진행되었다. 

출처: 직접 촬영


 

발표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탐험을 시작했다. 입주 작가들의 방은 2층부터 시작되었다. 복도 끝 주방에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약간의 핑거 푸드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진은 남기지 않았으나 아이스 버킷에 담긴 레모네이드, 탄산음료, 아사히 병맥주가 시원했다. 맥주 브랜드까지 다국적이라니. 컨셉에 충실한 레지던시다.


작업 공간은 2~3평 남짓의 단칸방이었다. 호수가 큰 회화나 대형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협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개월간 공들인 결과물을 작가들만의 공간에서 둘러볼 수 있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가마다 그들의 작업실을 서로 다르게 연출한 점이 재미있었다. 어떤 작가들은 작업대로 사용한 책상과 재료들을 그대로 배치했지만, 대안 공간처럼 일종의 전시 공간을 연출한 이들도 있었다. 각 작가가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에콰도르 출신의 Micaela Koenig Drouet(미카엘라 코에니그 드루에, 이하 미카엘라)와 인도의 Renuka Rajiv(레누카 라지브, 이하 레누카)의 작업실이었다. 미카엘라는 이번 레지던시에서 박물관의 수장고와 보존 시스템이 지니는 물리적 특성과 유물 분류체계가 지니는 권력적 특성을 탐구했다. 박물관이 컬렉션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과정과 그녀가 런던의 장소, 길거리의 쓰레기, 생활 반경의 오브제를 수집하고 자신의 공간에 배치하는 행위를 병치함으로써 박물관이 지닌 제도적 권력을 탐구한다.


미카엘라의 작업실은 ‘작가의 공간’과 ‘전시실’의 경계에 있었다. 바닥과 벽, 작업실 중앙은 그녀가 대상들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는 양상을 둘러볼 수 있는 일종의 전시 공간인 동시에 작업실 곳곳에 숨겨진 크고 작은 설치들로 그녀가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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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라의 스튜디오. 방문 구석에 놓인 작은 사진과 오브제들의 조합이 재미있었다. 

출처: 직접 촬영


 

레누카의 방은 그녀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레누카는 그녀만의 스타일이 반영된 직관적인 드로잉을 책, 직조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다. 작가는 아프간과 칸타 문화권의 전통 자수 수공예품 패턴의 스타일로 동시대 인간이 지닌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전통적 매체에 동시대적 정서가 반영된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사회적 주제로부터 영감을 받는데, 앞서 소개한 발표에서 지난 8월까지 테이트 모던에서 개최된 리 보웨리(Leigh Bowery)의 전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레누카의 작업실 벽면에는 그녀가 작업한 대형 직조물이 걸려 있었다. 작은 드로잉을 대형 작업으로도 구현하는 모습에서 표현에 대한 작가의 적극성을 엿볼 수 있었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작업실 입구 한쪽에 놓인 선반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사용하는 실, 직물, 도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는데, 대형 작업을 시도하기에 앞서 다양한 조합들을 구상하는 작은 실험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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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누카의 스튜디오. 그녀가 재료를 고르는 취향도 엿볼 수 있었다. 

출처: 직접 촬영




다양한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날, 오픈 스튜디오 데이


 

오픈 스튜디오 데이의 또다른 묘미는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문화예술인들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우연히, 다른 미술관에서 함께 봉사를 하는 친구 Y를 이곳에서 만나 그녀의 일행이었던 대학 동기 A와 J와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미카엘라의 작업실에서는 패션 디자인 전시에 참여하며 작품을 선보여온 에콰도르 출신의 작가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아카이빙 팀 사진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예술 종사자들을 마주친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픈 스튜디오, 대한민국 미술 축제에서 즐겨보자!


 

오픈 스튜디오는 서구권만의 특별한 행사가 아니다. 특히 9월은 대한민국 미술 축제로 다양한 지역에서 미술 행사를 운영한다. 다가오는 9월 25일부터 27일,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에서 오픈 스튜디오 “Crown Syness: 빛으로 그려내는 관계망”이 개최된다. 입주 작가들의 프로젝트 발표와 워크숍이 진행될 예정이니 작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예술 애호가들은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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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n Syness: 빛으로 그려내는 관계망” 포스터. 연계된 기획 전시는 지금부터 방문 가능하다. 

출처: 금천예술공장 인스타그램


 

학부 시절 작업물을 전시로 선보였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작가들은 낭만적인 종족이다. 자신의 작품이나 작가들의 생태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평소에 좋아하거나 눈여겨보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주저 말고 팬심을 표현해 보자. 뜻깊은 인연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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