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에 집중하면서 각종 음악들을 접하다 보면 국어 규정에 어긋난 표현이 사용되고 있거나, 일부 단어들이 본래의 뜻과는 다른 의미로 오용되고 있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문화예술이라는 분야에 어문 규정의 엄격한 준수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은 물론, 경우에 따라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표현만이 선사할 수 있는 참신함이 담긴 노래가 탄생할 수도 있는 법이니, 그러한 가사들을 두고 반드시 수정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오류의 일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그럼에도 전반적인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표현이 담겨 있는 일부 가사들은 그 청자들로 하여금 노래에 대한 몰입을 매우 어렵게 만들곤 한다. 작사가가 본래 의도한 바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장면이 떠오르거나, 다른 의미를 가진 여러 단어들이 연상되는 바람에 해당 노래의 감정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를 향한 몰입에 약간의 아쉬움으로 작용하는 가사들의 사례를 일부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반쯤 재미 삼아 적어본 글이니 부디 가벼이 읽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NRG ‘할 수 있어’
네 앞에서 땅만 쳐다보고 있어
고개도 들 수 없어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발매 당시 크나큰 인기를 끌며 NRG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던 공전의 히트곡 ‘할 수 있어’는 지금까지도 그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노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NRG’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중 하나인 만큼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지만, 애석하게도 해당 곡의 후렴구에는 가사에 대한 몰입을 적잖이 방해하는 구간이 하나 있다. 바로 ‘네 앞에서 땅만 쳐다보고 있어’라는 구절이다.
‘쳐다보다’는 본래 ‘위를 향하여 올려보다’, ‘얼굴을 들어 바로 보다’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상황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단어이다. 요컨대 반지하 방 안에서 창문을 올려다보는 등의 일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땅을 쳐다보다’라는 문장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상대 앞에서 수줍게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청년 시절의 풋풋함을 훌륭히 담아낸 가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쳐다보고 있어’ 대신 다른 적절한 표현을 사용했더라면 더욱 깊이 있는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공연히 상상해 본다.
FTISLAND ‘바래’
다시 태어나도 너만 바래
다시 사랑해도 너만 바래
익히 알다시피 ‘생각이나 바람대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이루어지거나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바라다’의 활용형은 ‘바래’가 아닌 ‘바라’이다. 운율이나 청각적 쾌감, 혹은 부드러운 어감의 형성을 위해 특정 단어의 발음을 의도적으로 변형시키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충분히 용인될 여지가 있겠지만, ‘바라’와 ‘바래’의 경우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바래다’라는 단어가 이미 ‘바래’라는 활용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를 ‘바래’로 표기하거나 발음하고 있는 노래들은 수없이 많지만, FTISLAND의 ‘바래’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인상은 개중에서도 유독 기묘하다. 다시 태어나거나 사랑하더라도 오직 너만 바랄 것이라는 애틋한 연모의 말로 인식되었어야 할 본래의 가사는 ‘바래’라는 발음으로 인해, 마치 이 인연과 사랑을 몇 번이나 반복하더라도 오로지 너만 계속 바랠 것이라는 집요한 저주의 말처럼 들려오곤 한다.
aespa ‘Next Level’
I’m on the next level 저 너머의 문을 열어
Next level 널 결국엔 내가 부셔
앞서 이야기한 ‘바래’와 유사한 사례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혼동해서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단단한 물체를 여러 조각이 나게 두드려 깨뜨리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부수다’의 활용형은 ‘부셔’가 아닌 ‘부숴’이다. ‘부셔’라는 활용형을 지닌 ‘부시다’라는 단어는 ‘그릇 따위를 씻어 깨끗하게 하다’ 내지는 ‘빛이나 색채가 강렬하여 마주 보기가 어려운 상태에 있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어느 경우에도 ‘널 결국엔 내가 부셔’라는 ‘Next Level’ 속 가사의 문맥과는 알맞게 상응하기 어려워 보인다.
흔히들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기는 하나 aespa의 ‘부셔’ 사랑은 유독 두드러지는 편이다. ‘Savage’의 ‘I’m a Savage 널 부셔 깨줄게’라는 가사나, ‘Girls’의 ‘두렵지 않아 네가 Hoot! 부셔줄게’와 같은 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부숴’가 사용되어야 하는 문맥 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숴’라는 발음과 ‘부셔’라는 발음이 선사하는 청각적 인상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자명해 보이기에, 해당 가사들 역시 창작가의 의도에 따른 존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다만, 수많은 이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aespa의 위상과 영향력을 고려해 본다면, 실제 발음에는 다소간의 변형을 가하더라도 공식적인 가사 정도는 올바른 방식으로 표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